[박헌정 더봄] 해외여행에서 한식 좀 먹으면 어때?
조회 0
덥다. 너무 더우니 입맛도 없다. TV에선 젊은 여행자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분짜와 쌀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그걸 보니 살짝 입맛이 당긴다. ‘쌀국수를 먹어볼까?’
여행 중에 뭐든 잘 먹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행 유튜버들은 앉은 자리에서 음식 몇 개를 뚝딱 해치우고, 다시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 먹는다. 그렇게 먹으니 왕성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걸까?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음식을 먹고도 끄떡없는 걸 보면 젊음의 힘이 느껴진다.
새로운 음식문화 경험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건만, 안타깝게도 음식에 대한 욕구와 먹는 양이 서서히 줄어들고 혀는 점점 까탈스러워진다. 때로는 줄어든 소화능력을 잊은 채 식탐을 부리다가 고생한다. 대부분 중장년 여행자가 공감하는 현실 아닐까 싶다.
입맛을 잃으면 컨디션이 저하되고, 억지로 먹다가 잘못하면 탈 난다. 그러므로 여행 때는 맛있고 유명한 외국 음식에 대한 기대감과는 별도로 치밀한 식사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 맛'이 그립다 “뭐 먹을까?” “당신 먹고 싶은 거.” “난 배 안 고픈데···.” 여행이 조금 길어지는 시점, 딱히 당기는 음식이 없고 나가기도 귀찮아 선택권을 서로 양보하는 척하며 비비적거린다. 이러다 결국 아무거나 사 먹고 들어온다. 이럴 때는 정말 청양고추 썰어 넣은 칼칼한 콩나물 김칫국에 계란찜이 그립다. 얼큰한 육개장도 먹고 싶다. 육개장 사발면 말고 진짜 육개장 말이다.
대개 외국 음식에서 마주치는 첫 장애물은 향신료다. 먹음직해 보여 ‘앙!’하고 베어 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풍미에는 어느 정도 적응된다. 더 근본적인 벽은 기름지고 진한 ‘느끼함’이다. 여행자가 접하는 관광지 음식은 대부분 달고 고소하고 기름져서 처음에는 맛있지만, 이내 질려 얼큰하고 개운한 음식이 생각난다.
물론 외국에도 매운 건 있다. 멕시코 고추(하바네로), 태국 고추(버드아이 칠리), 인도 고추(고스트 페퍼)는 우리 것보다 더 맵고, 마라탕 재료인 화자오(花椒)는 맵지는 않지만 그 얼얼하고 저린 맛은 꽤 당황스럽다. 물론 맵다고 해서 무조건 개운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맛이 그리운 것이지, 극단적인 매운맛을 원하는 게 아니다. 같은 채소라도 호텔 조식 때 여러 드레싱 곁들여 샐러드로 먹는 것과 귀국해서 겉절이로 무쳐 먹는 게 완전히 다른 것처럼, 우리 몸은 우리 식의 얼큰함, 개운함, 고소함, 담백함 등을 원하는 것이다.
대단한 걸 먹겠다는 게 아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음식 걱정은 크게 줄었다. 우리 한국인 입맛도 많이 국제화되어 이제 고수·팔각·정향(丁香)·샤프란 정도 향신료에는 영향받지 않고 씩씩하게 잘 먹는다. 챙겨가기 좋게 나온 한식 재료나 완제품이 다양해졌고, K푸드 확산으로 해외 한국 식료품점과 한국 식당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에서는 여전히 먹는 문제로 긴장하게 된다. 물론 그런 곳까지 가서 대단한 한식을 원하는 건 아니다. 한국인은 쌀만 있어도 뱃속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다. 그래서 때로는 세계 곳곳에 정착한 중국계 사람들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중국식품점에서 둥글둥글한 단립종 쌀과 길고 못생긴 배추를 사서 끈끈한 쌀밥을 짓고 오뚜기 된장을 한 숟갈 풀어 배춧국을 끓이면 저녁이 평온해진다.
신기하게도 유럽에서 아시아를 향해 동진(東進)할수록 우리 입에 맞는 식재료가 많이 보인다. 몇 년 전 루마니아 브라쇼브의 어느 마트, 유통기간이 굉장히 긴 중국산 두부와 고급 식재료인 양 유리병에 다소곳이 들어앉은 콩나물을 발견했다. 눈물 나게 반갑고 사랑스러웠다. ‘와, 김치찌개에 두부 몇 조각 넣었을 뿐인데···. 역시 한국인한테는 국물이야!’ 결핍은 진정한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현지 식료품과 한식 재료의 조화 한 달 살기처럼 긴 여행 때는 곳간을 채워놔야 안정감이 생긴다. 시장이나 슈퍼마켓 장보기는 해외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 첫날 짐을 풀고 나면 곧바로 장 보러 간다. 태국 재래시장에는 온갖 기발한 식재료가, 독일에는 소시지와 맥주가, 불가리아에는 요구르트가 사방에 가득하다. 우리 부부에게는 특히 그 나라 특유의 과일을 고를 때가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하지만 재미는 재미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 많은 식품이 전부 우리 입맛에 맞을 리 없다. 한국인 많고 거리 가깝고 한류 영향이 큰 아시아에는 한국 식품이 흔하지만, 유럽 쪽으로 갈수록 한식 재료가 더 절실하다. 한국 식당은 드물고, 현지 음식이 안 맞을 위험성도 더 크다.
여행자들은 “이탈리아에선 피자, 튀르키예에선 케밥, 조지아에선 하차푸리, 독일에선 학센…”하며 그 나라 대표 음식을 실컷 먹어보겠다고 벼르지만, 매일 그것만 먹을 수 있나?
시내나 관광지에서 잘 다듬어진 그런 음식을 충분히 섭렵하고 나면 다음은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식단을 경험할 차례다. 동네 골목 상권으로 한 발만 들어가도 원형 그대로인 그들의 음식문화를 접하게 될 텐데, 수천 년 이어져 온 그들의 맛이 과연 내 입에도 잘 맞을까?
이럴 때 한식의 향(香)이 적절히 가미되어야 한다. 배는 고픈데 숙소 주변 음식은 마땅치 않고 밥하기는 피곤하다고? 식당에서 아무거나 포장해 와서 거기에 김칫국만 끓여 곁들여 보라. 수프 종류를 사다가 고춧가루만 뿌려 먹어도 훨씬 나을 것이다.
비행기 기내식으로 나온 튜브 고추장을 챙겨 일주일 버텼다는 눈물겨운 체험담이 괜한 엄살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현지 음식은 여행 자극과 몰입감을 높여주고, 우리 음식은 안정감을 준다.
여행 중 한식 먹는 게 어때서? 그런데 현지 음식만 먹다 보니 한식이 그립다고 하면 “힘들어도 그 나라 음식을 경험하는 게 진정한 여행이지!”라며 훈계하는 사람이 꼭 나타난다. 토를 달 수 없는, 백번 천번 옳은 말이라 쓴웃음만 짓게 된다. 이상론과 현실론이 맞설 때 이상론을 펴는 사람을 당해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며칠 짜리 여행이라면, 처음 나가 본 해외라면, 학습과 경험의 폭을 넓혀나갈 세대라면 그 말이 옳다.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아무거나 잘 먹게 된다. 나도 20대 때는 거지꼴로 식빵 씹으며 땡볕 아래 몇 날 며칠 동안 돌아다녀도 힘든 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중년 이후에는 그런 괴력을 과신하면 안 된다. 그대는 그러시라. 나는 한식을 먹으련다.
여행 중에 접하는 음식은 문화를 체험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몸을 유지하는 본질적인 역할이 우선이다. 유명한 음식이 내 입에는 안 맞는다고 해서 당황할 것 없이, 뭐든 입에 맞는 걸 충분히 먹어 체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낯선 곳에서 내가 믿을 건 오직 내 몸뿐이다.
그런데 밖에서 삼시세끼를 전부 해결하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매번 옷 차려입고 나가는 건 무척 귀찮고, 입에 맞는 음식이 있다는 보장도 없고, 돈은 많이 든다. 현실적으로 지출 규모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 먹는 것과 해 먹는 것을 적절히 섞는 편이 낫다. 대단한 한식에 도전하자는 건 아니다. 끼니마다 그곳 식재료에 한식 재료를 약간씩 가미해 변주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음식을 잔뜩 싸 들고 갈 필요는 없다. 여행 고수일수록 음식 보따리는 작아진다.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냉장고를 통째로 옮겨갈 듯이 욕심부리지 말고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챙기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없으면 없는 대로 방법이 생긴다.
사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약간 망설였다. 과연 밥 먹는 게 여행자들의 관심사가 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여행 중에 음식 때문에 고생한 경험을 말하고 있건만 세상에 돌아다니는 여행담과 영상에서는 현지 맛집과 별미에 관한 행복한 추억만 소개된다. 맛있는 음식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만나시고, 쪼잔할 만큼 실용적인 내 글은 현실 여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여행 음식 보따리 챙기기 Tip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 위주로 - 김치는 금방 시어지므로 포장김치로 적당량만 - 마늘은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고춧가루는 없으니 꼭 챙기자.
- 누룽지는 몸이 안 좋을 때 최고의 비상식품 △현지 식재료를 우리 양념으로 - 현지 채소·생선·고기에 마늘·고춧가루 보태면 한식 - 조미료(미원·감치미·치킨스톡 등)를 조금 챙기면 의외로 유용하다.
- 쌀은 어디든 있으므로 몇 끼 분량이면 충분하다. △국물 하나면 속이 편안해진다. - 김치·된장·고춧가루·코인 육수 있으면 완벽 - 황태·미역·우거지 등 블록 형태의 즉석 국 준비 - 라면은 현지에도 있지만 불안하면 몇 개만 △약간의 도구가 큰 차이를 만든다. - 2인용 전기밥솥 하나면 햇반 불필요 - 스테인리스 밥공기·수저·주방 가위 - 밀폐용기 있으면 김치 냄새 또는 남은 음식 걱정 끝! 여성경제신문 박헌정 작가
박헌정 작가 기업체에서 25년 일한 후 이 시대 중장년의 의미 있고 행복한 놀기 문화를 효과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조기 은퇴하고 먼저 놀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외 여행, 지방 이주, 대학원 등 여러 공간을 넘나들며 놀아본 성과와 문제의식을 ‘원초적 놀기 본능’이라는 타이틀로 7년간 연재했다. 때로는 낯선 도전 앞에 망설이지만 결국 설렘 속에 길을 나선다. 은퇴 세대에게는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세상을 겪어보는 것만큼 즐거운 놀이도 드문 것 같아 그동안의 여행 경험과 지혜를 나누려 한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해외여행 한식 #해외 한국식당 #해외 한국식품 #여행용 한식 #부모님 해외여행 준비 #해외여행 비상식량 박헌정 작가 당신만 안 본 뉴스 부정선거 용어 사용만은 막아라?···中 영향력 공작 10년, 트럼프에 포착됐다
김성재 칼럼 SK 하이닉스, 죽을 고비 넘기고 ‘저평가’ 황금오리로 7·7법, 시행 일주일 지났는데···가짜뉴스 여전, 규제는 '고무줄' 김현우의 돌보다 보증금 1억·월 150만원···중산층 실버타운과 프리미엄 요양원 선택법 인터뷰 타나다 데쓰지 일본수면종합검진협회 이사 "잠 못자는 사회가 치르는 대가" 칩 장벽도 GPU 앞엔 종이호랑이···中 빗장 풀자 K반도체 'HBM 특수' 기대 김현우의 돌보다 "새벽 2시 근무자를 물어라"···좋은 요양 시설 고르는 법 부정선거 용어 사용만은 막아라?···中 영향력 공작 10년, 트럼프에 포착됐다
개의 댓글 회원로그인 작성자 비밀번호 댓글 내용입력 등록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닫기 더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삭제 닫기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본문 / 400 비밀번호 수정 닫기 내 댓글 모음 닫기 주요기사 토큰금융 ㊥ 은행은 예금을, 운용사는 펀드를···월가가 토큰을 쓰는 법 김민수 더봄 상속보다 앞선 노후 준비 '치매신탁'···건강할 때 뜻 세워야 김현우의 돌보다 요양원 원장 불안 요소, '낙상' 예방하는 액자의 정체는?
박헌정 더봄 해외여행에서 한식 좀 먹으면 어때? 여경 코멘토 7월 셋째 주 3명 활동···지적·의견 9건 무슨 내용?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
뉴스 다음 글
전체 보기N베트남 최대 철강社 호아팟그룹, 중부 ‘철도레일·특수강’ 공장 증설계획…20조 동 추가 투자
조회 0 · 댓글 0
N“인공지능에 빠진” 베트남, 상반기 ‘AI앱’ 사용 7억 시간 돌파…전년동기比 2배↑
조회 0 · 댓글 0
N“물 붓는 면 대신 냄비 라면으로 승부”…베트남서 1,400억 원 쓸어담은 팔도 ‘코레노’
조회 0 · 댓글 0
N충남도, 베트남 수출시장 공략 속도 내…'비즈니스 매칭데이' 행사 추진 - 전국 | 기사 - 더팩트
조회 0 · 댓글 0
N한국정경신문
조회 0 · 댓글 0
N이상천 로지시스 상무 “韓 EV 현장 운영 경험, 베트남 스마트 모빌리티 시장에 이식”
조회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