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 에세이] 베트남 푸미흥의 빈자리는 누가 채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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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밤 11시 반, 옛 2군 안푸 지역의 카페 ‘쓰리어클락’은 여전히 밤을 즐기려는 젊은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원한 음료를 앞에 두고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그 활기찬 소란함은, 호치민시의 대표적인 한인촌인 7군 푸미흥의 한산한 거리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026년 6월의 푸미흥. 잘 정돈된 가로수와 익숙한 한인 서비스 시설들, 그리고 준수한 도시 인프라를 앞세워 이곳은 여전히 2세대 한인촌으로서의 명맥을 차분히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이곳에 뿌리내린 교민들을 제외하면, 새로 흘러들어오는 발길은 어느덧 뜸해진 지 오래다. 푸미흥을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한인 자영업자들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며 나직한 한숨을 보태곤 한다.
응웬반린 대로를 중심으로 교민들 사이에서 ‘강남과 강북’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했던 푸미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도로변 상가 곳곳에 늘어난 공실이 도시의 가라앉은 생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옛 2군, 특히 타오디엔과 안푸는 교민들의 유입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한식당과 마트, 여러 서비스 시설들이 들어서며 매일 다른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푸미흥에 살던 교민들이 오랜 시간 정들었던 터전을 떠나 2군으로 향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오랜 시간 변화 없이 멈춰 서 있는 상권에 대한 피로감이 자리 잡고 있다. 젊은 층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새로운 콘텐츠가 부족해진 탓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곳을 지키는 교민들의 연령대가 높아진 만큼, 푸미흥의 상권도 그 걸음에 맞춰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청년들의 눈높이를 맞출 만한 감각적인 공간들이 새로 채워지지 않으면서, 활기를 잃은 상가들의 피로감도 눈에 띄게 짙어졌다. 괜찮다 싶은 자리가 나면 금세 새로운 가게가 치고 들어오는 2군과 달리, 푸미흥은 목 좋은 대로변의 점포들마저 임대문의 안내문을 붙인 채 수개월째 새 임차인을 기다리는 형편이다.
반면, 타오디엔과 안푸는 세련된 레스토랑과 감성적인 문화 공간을 앞세워 단기 여행객과 젊은 교민, 직장인들의 발길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서구권 이민자들이나 여행객들이 먼저 단단하게 형성해 둔 특유의 이국적인 커뮤니티와 독특한 상권이 기반이 됐다.
특히 타오디엔은 골목 구석구석 숨어있는 감성적인 로컬 카페와 유럽풍의 파인 다이닝, 브런치 레스토랑, 크래프트 비어 바 등이 어우러지며 도시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 인구를 끌어당기는 가장 확실한 무기를 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타오디엔과 안푸 일대에서는 임대료 시세가 없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곧 값이 되는 상권이 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조금씩 떠나간 푸미흥의 빈자리는 이제 중화권 인구와 자본이 빠른 속도로 채워가고 있다. 푸미흥 골목에서 중국어가 낯설지 않게 들리는 현상은, 올 들어 베트남 전체 외국인 입국자 중 중국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중국인 입국자가 늘어난 만큼 푸미흥도 중국인이 늘어난 것이 거리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모양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존 한인 중심의 식당과 마트가 주를 이루던 푸미흥의 골목들은 어느새 중국인 고객을 타깃으로 한 상권으로 체질을 바꾸는 중이다. 정들었던 한국어 간판이 내려간 자리에는 눈에 띄는 화려한 중국어 간판이 내걸리기 시작했고, 중국어 메뉴판을 갖춘 음식점과 디저트숍이 늘어났다. 여기에 성인오락실과 마사지 업소에 이르기까지, 골목이 가진 고유의 색채 자체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일상 전반에서 관측된다. 푸미흥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는 20대 베트남 여성 A씨는 “요즘 부쩍 중국인 고객이 크게 늘면서 전체 외국인 고객 중 중국인의 비중이 한국인보다 커진 상황"이라며, "이 과정에서 일부 중국인들이 필수 의무인 임시거주신고를 거부해 현지 집주인들과 소소한 마찰을 빚는 행정적인 잡음이 생기기도 한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매일 손님을 맞이하는 자영업자들의 체감도 다르지 않다. 푸미흥에서 한식당을 운영 중인 B씨는 "최근 매장을 찾는 외국인 고객 중 중국인 손님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게 보인다"며 달라진 공기를 말했고,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남성 컷트 전문점 현지 직원 C씨 역시 "외국인 손님 가운데 한국인이 줄어든 자리를 중국인들이 채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권이 노후화되고 젊은 층이 편리함과 트렌디함을 찾아 이동하는 흐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일지 모른다. 도시도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 정체된 곳에 공실이 생기고, 그 빈자리를 다른 자본이 채우는 것 역시 시장의 논리다.
그러나 웃으며 거리를 걷는 한국 교민이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 익숙했던 한글 간판들이 하나둘 내려가고 그 자리에 붉은색 중국어 간판과 이국적인 메뉴판이 채워지는 골목을 걷다 보면 이유 모를 씁쓸함이 밀려드는 것이 사실이다.
화려하지 않아 더 정겨웠던 푸미흥, 이곳을 거쳐간 교민들의 기억 한켠에 남아있던 거리의 모습은 그렇게 낯설게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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