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참사, 잠 못 자는 10만 재한 네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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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이하 현지시간) 네팔 북부 티베트 접경지역을 덮친 대홍수와 산사태의 피해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참사 이후 고국인 네팔에 가족을 두고 떠나온 재한 네팔인들도 가족들의 안부와 무너진 삶의 터전을 걱정하며 애를 태우는 상황이다.
서울에 거주 중인 네팔 북부 지역 누와코트 출신 대학생 수잔 샤르마(22)씨는 홍수 소식을 접한 뒤 부모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가족과 집 모두 무사했지만 집 안까지 흙탕물이 들어와 바닥에 보관하던 쌀과 이불 일부를 버려야 했다. 샤르마씨는 “부모님은 계속 괜찮다고 했지만 영상통화를 해보니 어머니가 통화하면서도 바닥을 닦고 있었다”며 “아버지도 일을 나가지 못하고 집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달에는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평소보다 조금 더 보낼 생각”이라고 했다.
샤르마씨처럼 한국에 머물면서 네팔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국내 체류 네팔인은 지난 6월 말 기준 10만494명으로 처음으로 10만명대를 넘어섰다. 2022년 4만7865명에서 4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네팔인들은 중국과 베트남, 미국, 태국,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큰 외국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네팔인 사회가 급격히 확대된 배경에는 취업과 유학이 있다. 한국과 네팔은 2007년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고용허가제는 민간 송출업체를 거치지 않고 양국 정부가 직접 인력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다른 해외 취업 경로보다 비용 부담이 비교적 적고 한국의 임금도 높아 네팔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여기에 국내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확대하면서 네팔인 유학생도 지난 6월 기준 2만881명에 달한다.
이 같은 경로로 국내에 입국한 스웨타 카드카(24)씨는 중국과 접경한 고향 라수와에 있는 가족의 집에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처음에는 안도했다. 그러나 고향 친구와 연락하면서 친구 부모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이 침수됐다는 비보를 접했다. 카드카씨는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니 가게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놓고 정리하고 있었다”며 “건물 자체는 괜찮지만 물에 젖은 쌀과 밀가루 등은 팔 수 없게 됐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새 물건이 언제 들어올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친구가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빙하 붕괴가 부른 대홍수 네팔 대홍수는 히말라야 고지대의 대규모 빙하와 암석 붕괴로 발생했다. 네팔 중북부 라수와 지역의 랑탕국립공원 내 중국 국경 인근에서 암석과 빙하가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과 토사가 보테코시강으로 한꺼번에 쏟아진 것. 당초에는 지진이 빙하 붕괴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미국 지질조사국은 지난 8월 27일 “빙하를 동반한 사면 붕괴가 규모 5.2 지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발생시켰다”며 “최초 붕괴가 빙하 일부를 포함한 산사태였는지, 빙하 자체의 붕괴였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대한 급류는 네팔 북부 지역 라수와와 누와코트 등을 휩쓸며 주택과 도로, 교량, 수력발전 시설 등을 잇따라 집어삼켰다. 특히 한국 기업이 건설 중이던 수력발전소 현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9월 3일 네팔 재난당국에 따르면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최소 1225명, 실종자는 4757명이다. 그중에는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6명과 한국남동발전 직원 3명 등 한국인 9명도 포함됐는데, 이들은 9월 3일 현재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 8월 27일 외교부·소방청·경찰청 관계자들로 구성된 합동 신속대응팀을 현지에 파견하고, 네팔에 100만달러(약 13억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네팔 정부는 대홍수 직후 군과 경찰 등 약 2만1000명을 투입했지만, 산악지대의 악천후와 도로 유실로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빙하 붕괴로 새로 생긴 호수가 넘치면서 추가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전공 교수는 “기후변화가 이번 홍수를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 빙하의 안정성이 크게 약해지면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며 “얼음이 녹을수록 지표가 더 많은 열을 흡수해 다시 얼음이 빠르게 녹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히말라야와 같은 빙권에서는 유사한 재난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대홍수 시험대 오른 ‘래퍼 총리’ 한편 국제적십자사는 이번 재난으로 네팔에서만 9만명 이상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홍수 참사로 발렌드라 샤(36) 네팔 총리도 취임 5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9월 네팔에서는 정부의 소셜미디어(SNS) 차단 조치와 부패·족벌주의 등에 반발한 청년층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K P 샤르마 올리 당시 총리가 사퇴했고,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과도정부를 이끌었다. 이후 지난 3월 총선에서 유명 래퍼 출신의 샤 총리가 이끈 ‘국민독립당(RSP)’이 전체 275석 가운데 182석을 차지하며 압승했고, 샤는 같은 달 27일 총리에 취임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래퍼로 활동했던 샤 총리는 2022년 무소속으로 수도 카트만두 시장에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기성 정치권과 거리를 둔 젊은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기대를 받았지만, 중앙정치 경험이 부족해 국정 운영 능력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나마 대홍수의 초기 국면에서 샤 정부는 비교적 신속하게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샤 총리는 홍수가 발생한 지난 8월 26일 긴급회의를 열고 군과 경찰 등 국가기관을 구조 현장에 투입했다. 네팔 정부 발표에 따르면, 사흘 만에 군과 민간 헬기 16대가 99차례 운항해 수력발전소 터널에 갇혔던 191명을 포함한 4451명을 구조했다. 네팔 정부는 라수와와 누와코트, 다딩에 긴급구호비 2500만루피(약 2억2000만원)를 우선 지급한 데 이어 피해를 본 15개 지방정부에 6750만루피(약 6억원)를 추가 배정했다. 샤 총리와 각료들은 한 달치 급여도 재난구호기금에 기부하기로 한 상태다.
네팔 출신의 유학생 사랄라 라마(22)씨는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샤 총리에 대한 청년층의 기대와 지지가 여전히 높다”며 “정부가 구조와 긴급구호에 집중하고 총리와 각료들도 한 달치 급여를 기부하면서 국민 여론도 긍정적인 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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