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둥지를 틀다…‘K직장인’ 된 대한외국인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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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매일경제
# 우즈베키스탄 출신 사르도르 굴로모브 씨는 CJ제일제당에서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신규 시장 개척 업무를 하고 있다. 2022년 7월 입사한 뒤 전 세계 11개국 진출과 현지 파트너사 20곳 이상 발굴에 참여했다. 담당 지역 매출은 진출 초기보다 5배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 러시아권과 이슬람 문화권 이해를 바탕으로 본사와 현지 거래처를 연결한 성과다.
굴로모브 씨는 “채용 기회와 성장 경로를 해외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지원 방법을 몰라 한국 취업을 망설이는 글로벌 인재가 많다”고 말했다.
210만9000명. 국가데이터처가 조사한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5181만7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100명 중 4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지난해 내국인은 4970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5만4000명 감소했지만 외국인은 6만6000명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인종·다문화 국가’ 기준(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중 5%)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한동안 외국인들은 국내 제조업·건설 현장 등에서 단순 기능 인력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금융, 유통, 뷰티, 이커머스, 인공지능(AI) 등 근무 업종이 한층 다양해졌고 연구개발(R&D), 마케팅, 영업, 기획 등 주요 업무를 도맡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인 엘리트 못지않게 기업 핵심 요직을 꿰차는 사례도 적잖다.
기업들은 왜 외국인 임직원을 채용할까. 외국인들이 수많은 나라 중 한국에 정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외국인’ 활약상을 들여다본다.
금융권, ‘외국인 채용’에 진심 은행 창구·핀테크 개발 조직서 맹활약 공장과 건설 현장을 떠올리던 외국인 고용 지형에서 요즘 가장 돋보이는 업종은 뜻밖에도 금융과 뷰티다. 은행 창구와 핀테크 개발 조직, K뷰티 브랜드의 글로벌 마케팅팀에 외국인 직원이 속속 자리 잡고 있다.
두 업종의 셈법은 닮았다. 금융은 210만명을 넘어선 국내 체류 외국인이 ‘고객’이 됐고, 뷰티는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하려면 현지 감각을 갖춘 ‘사람’이 필요해졌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외국인 시장을 뚫는 가장 빠른 길이 외국인 인재라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금융권 변화가 상징적이다. 보수적 채용 문화의 대명사였던 은행·금융지주가 외국인 채용 문을 활짝 열었다.
하나은행이 대표적이다. 이 은행 외국인 임직원은 올해 6월 말 기준 52명(현지 계약직 제외). 중국(15명), 우즈베키스탄·인도네시아·태국(각 5명) 등 15개국 출신이다. 눈에 띄는 건 속도다. 2021년 이후 매년 2~5명 수준이던 채용 규모가 올해 상반기에만 13명으로 뛰었다. 체류 외국인이 늘며 외국인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다.
이들은 주로 외국인 특화 점포와 본점 외환손님마케팅부에서 일한다. 효과도 뚜렷하다. 해외 송금·급여 이체 등 외국인 실거래 고객이 늘고 고객 이탈이 줄었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외국인 직원의 아이디어는 상품과 서비스에도 스며들었다. 해외 송금 전용 앱 ‘하나EZ’의 인증 방식과 메뉴 배치 등에 외국인 직원 의견이 반영됐고, 해외 은행 제휴 기반의 다이렉트 송금 서비스, 외국인 전용 적금 상품 ‘하나더이지 적금’도 이들의 전문성에서 나왔다.
지방 금융그룹도 잰걸음이다. JB금융지주의 외국인 채용은 김기홍 회장이 직접 추진하는 사안이다. 미국 유학 시절 치열한 경쟁 속에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던 본인 경험에서 착안했다.
2024년 2명에 그쳤던 전북은행의 외국인 채용은 2025년 10명, 올 상반기 5명으로 급증해 본사 오피스 근무 기준 총 17명이 됐다. 국적도 러시아, 몽골, 인도네시아, 중국, 네팔 등 다양하다. 올해 상반기 지주 외국인 채용 포지션에는 지원자만 600명 이상 몰렸다.
직무의 진화도 뚜렷하다. 초기 외국인 대상 여신 등 금융 본업 중심에서, 외국인 특화 디지털 서비스 ‘브라보코리아’ 기획, AX 기획(AI 전환 기획), 데이터 분석, 리스크 관리 등 핵심 기획 분야로 채용 영역이 넓어졌다.
JB금융그룹에서 디지털자산 신사업을 담당하는 러시아 출신 올렉 스마긴 대리가 대표 사례다. 신한은행 역시 외환고객솔루션부에 일본인 팀장을 두고 일본계 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를 맡기고 있다.
핀테크는 한발 더 나아갔다. 토스는 아예 “국적을 기준으로 채용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외국인이라서 뽑는 게 아니라, 뽑고 보니 외국인인 경우다. 토스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제품과 조직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성과 역량”이라며 “외국인 구성원들은 프로덕트, 개발, AML(자금세탁방지) 등 핵심 직군에서 일하고, 일부는 이미 조직과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효과는 ‘관점의 다양화’로 나타난다.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가진 구성원이 제품 개발에 참여하며 익숙해서 놓치기 쉬웠던 사용자 관점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협업의 최대 난관이던 언어 장벽은 기술로 푼다. 토스 측은 “AI 기반 번역 도구와 협업 툴을 적극 활용하며 언어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며 “구성원이 직접 AI로 실시간 번역 환경을 구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아예 외국인이 절반을 넘는 금융사도 있다. 해외송금 핀테크 한패스는 전체 임직원 338명 중 174명(51.4%)이 외국인이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은데 2024년과 비교해 외국인 임직원이 2배 이상 늘었다. 국적도 중국, 베트남, 필리핀, 태국, 네팔, 방글라데시, 튀니지 등 20여개국에 이른다. 한국 체류·방한 외국인이 주 고객인 사업 구조가 조직 구성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이들은 국가별 영업·마케팅을 넘어 상품기획, 사업전략, FX 운영 등 핵심 업무에 직접 참여한다. 이미 본부장급 외국인 리더가 전략 조직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한패스 관계자는 “외국인 임직원들이 고객 경험과 시장 특성을 사업 언어로 전환해 상품과 정책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신규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각 시장을 이해하는 글로벌 인재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게 회사 측 판단이다.
뷰티, 외국인 직원 ‘현지 감각’ 중요 ‘밖에 있는 외국인’ 잡기 위한 목적 뷰티 업계의 외국인 채용은 방향이 반대다. 금융이 ‘안에 들어온 외국인’을 겨냥한다면, 뷰티는 ‘밖에 있는 외국인’을 잡기 위한 목적이 크다. K뷰티 수출이 중동, 동남아, 북미, 유럽으로 전방위 확장되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몸으로 아는 인재가 마케팅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됐다.
K뷰티 유통 플랫폼 실리콘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외국인 임직원 19명의 국적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알제리, 수단, 예멘, 러시아, 독일 등 14개국에 걸쳐 있다. 특정 국가 쏠림 없이 북미·중동·아시아·유럽·중남미 전 대륙에 고르게 분포한 국적 구성 자체가 여러 대륙을 동시에 공략하는 사업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성과는 SNS 숫자로 증명된다. 수년 전 수만명 수준이던 ‘스타일코리안 글로벌’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약 94만명으로 불어났다. 현지 직원이 직접 운영하는 중동 타깃 ‘MENA 채널’은 97만명 이상, 중남미 ‘Hola 채널’은 약 20만명을 확보한 메가 채널로 컸다. 실리콘투 관계자는 “중동은 종교·문화적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장인데, 현지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인력이 채널을 직접 운영하며 콘텐츠 완성도와 현지 반응이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아예 글로벌 사업 지휘봉을 맡긴 곳도 있다. 뷰티 기업 뉴셀렉트는 2024년 처음 외국인을 채용한 뒤 2년 만에 홍콩, 중국, 일본, 러시아, 싱가포르, 세네갈 등 6개국 출신 11명으로 늘렸고, 글로벌사업본부는 미국 출신 워렌 제인 희(Jane Warren) 본부장이 이끈다. 이전 국내 뷰티 브랜드에서 틱톡숍 채널을 단독 운영하며 전사 매출 비중 4%였던 브랜드를 48%까지 키운 인물이다. 워렌 본부장은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실행력을 즐기는 편”이라며 “현지 인사이트와 한국 기업의 빠른 의사결정·실행력이 결합될 때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 성과도 뚜렷하다. 일본 시장에서는 기능성·효능 근거 중심 콘텐츠와 인플루언서 협업 전략으로 브랜드 ‘샤르드’가 큐텐재팬 메가데뷔 어워즈 1위에 올랐다. 일본사업부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맡고 있는 오카다 마오 매니저는 “일본 기업은 선배에게 배우며 단계적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기업은 빠른 단계부터 직접 업무를 맡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가 많다”며 “입사 1년이 안 된 신입인데도 일본 현지 인플루언서 오프라인 행사를 직접 담당했다”고 전했다.
아예 외국인이 다수인 회사도 있다. 병·의원 대상 글로벌 마케팅 기업 더에쓰씨의 외국인 임직원은 2021년 7명에서 2024년 38명, 2025년 90명으로 4년 새 13배 가까이 불었다. 중국, 일본, 태국,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CIS 지역과 UAE까지 채용 국적을 넓혔고, 통번역·고객 응대 중심이던 직무도 상품기획, 광고기획, 콘텐츠 기획 등 사업 핵심으로 확대됐다. 이미 외국인 파트장·팀장·임원급이 국가별 마케팅 전략과 조직 운영을 총괄한다. 외국인 직원의 최대 고민인 비자 문제는 자체 자동화 관리 시스템으로 풀었다. 비자·근무허가 만료 예정자에게 사전 알림과 필요 서류를 안내하고, 제휴 노무법인·행정사와 협력해 발급·연장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중국 마케팅 전문기업 레이블코퍼레이션도 올해 6월 기준 서울 본사와 자회사 임직원 53명 중 35명(66%)이 외국인이다. 외국인 비중은 2023년 45%에서 매해 높아져 3명 중 2명꼴이 됐다. 핵심 조직인 사업운영본부는 총괄 임원과 리더급 관리자 전원이 외국인이다.
회사가 유통·마케팅 대행에서 벗어나 자체 브랜드 ‘보라페’를 성공시킨 배경에도 최정상급 ‘왕훙(중국 인플루언서)’과의 접점을 만들고 상시 라이브 방송 체계를 구축한 중국인 임직원들이 있었다. 현지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형과 위생·안전성 요소를 제품 개발 단계부터 반영한 것도 이들이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변화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빠르다”며 “깊은 문화적 맥락과 트렌드 이해, 네트워킹 없이는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후발 주자도 뛰어들었다. K뷰티 마케팅 전문기업 뷰스컴퍼니는 글로벌 마케팅 확장에 맞춰 2025년 처음 외국인 채용을 시작해 현재 중국인 마케터 등 4명이 근무 중이다. 박진호 뷰스컴퍼니 대표는 채용 1년 만에 효과를 체감한다고 말한다. “글로벌 마케팅 경험이 있더라도 현지에서 성장한 인력이 가진 문화적 이해도와 트렌드 감각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중화권 직원 합류 후 현지 플랫폼과 콘텐츠 문법, 소비자가 반응하는 표현을 빠르게 파악하게 됐고, 기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현지 인플루언서·파트너 네트워크도 확장됐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의 외국인 인재 활용법 통번역 넘어 AI·R&D·마케팅 진출 국내 대기업들도 외국인 임직원 채용에 힘쓰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대기업의 외국인 전문인력 채용은 ‘소수 정예’에 가깝다. 해외 법인 현지 채용을 제외하면 국내 본사 외국인 직원 비중이 전체 임직원의 1%에도 못 미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외국인 대상 대규모 공채보다는 일반 전형에서 국적과 관계없이 필요한 인재를 뽑는 방식이 흔하다. 과거 통·번역과 외국인 고객 응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연구개발(R&D), AI, 상품 소싱 등 사업 경쟁력과 맞닿은 직무로 넓어졌다.
유통 업계가 대표적이다. 신세계그룹에서 면세점 사업을 맡는 신세계디에프는 올 7월 말 기준 외국인 직원 5명이 근무한다. 전체 임직원의 1.3%다. 중국 국적이 3명, 일본과 캐나다가 각각 1명이다. 이들은 해외 브랜드사와 협업하는 상품기획자(MD)와 중국 시장 영업을 맡는다. 상품 소싱과 사업개발, 해외 파트너 협업, 현지 소비자 관점을 반영한 상품 기획에도 참여한다. 면세 사업은 여러 국가의 브랜드와 거래처를 상대하는 만큼 언어뿐 아니라 현지 소비 성향과 유통 구조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서다. 신세계디에프 관계자는 “외국인 직원 역할이 고객 응대나 통·번역을 넘어 상품 소싱과 사업개발로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CJ그룹은 외국인 인재를 해외 영업뿐 아니라 R&D, 글로벌 사업전략, 마케팅, 재무, 인사 등 본사 핵심 직무에 배치한다. 과거 해외 영업 중심에서 시장 분석과 사업 발굴, 제품 개발 등으로 역할이 한층 넓어졌다.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인 그레고리 옙은 맥코믹, 펩시코, IFF 등 글로벌 식품 기업에서 30년 넘게 근무했고 R&D 경험까지 갖춘 인재다. 만두와 치킨, 김치 등 ‘비비고’ 글로벌 전략 제품(GSP)을 앞세워 K푸드 확산을 이끈다.
쿠팡에서는 외국인 인재가 기술·광고·제품 조직 리더로 활약 중이다. 광고사업부와 엔지니어링,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조직에 외국인 부사장(VP)과 디렉터급 임직원이 근무한다. 사업 방향과 제품 개발을 이끄는 자리다.
아마존 광고 사업 담당 출신인 케일럽 힐 쿠팡 부사장은 2021년부터 쿠팡 광고사업부(쿠팡애즈)에서 광고 비즈니스 전반을 총괄 중이다. 딩 저우 엔지니어링 부사장 역시 광고사업부 개발을, 비샬 쿠마르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부사장은 광고 상품 기획과 전략을 총괄한다. 글로벌 빅테크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쿠팡 광고 사업 기술과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고객과 접점이 많은 서비스업에서도 외국인 채용이 활발하다. 스타벅스코리아에서는 외국인 임직원 70명이 근무 중이다. 외국인 채용을 본격화한 2023년 말(28명) 이후 2.5배가량 늘었다. 일본과 중국, 대만, 미국, 캐나다 등 19개 국적의 직원이 근무한다. 이들 외국인 직원은 주로 바리스타로 일한다. 외국인 전용 직무를 두기보다 직무 요건을 갖춘 지원자를 기존 채용 과정에서 선발하고, 입사 후 평가와 승격 기준도 내국인과 똑같이 적용한다. 바리스타로 입사해 전반적인 매장 운영과 업무 조율을 맡는 슈퍼바이저로 승격한 사례도 나왔다.
호텔 업계에서는 외국인 전문 셰프와 고객 서비스 인력 채용이 늘었다. 방한 외국인이 증가하고 식음 경쟁이 치열해지며 정통 조리 기술과 현지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진 영향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외국인 직원은 2023년 9명에서 올해 17명으로 늘었다. 전체 임직원의 1% 미만이지만 미국과 프랑스, 일본, 중국, 인도 등 다양한 국적 직원이 일식·중식 조리와 외국인 고객 전담 서비스를 맡는다. 조선호텔앤리조트 관계자는 “전문 조리 기술자를 확보하고 외국인 고객에게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채용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조리법을 메뉴에 반영하고 언어·문화 차이에서 오는 불편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GS그룹 계열 파르나스호텔에는 외국인 직원 13명이 근무한다. 전체 직원 1404명의 0.9%다. 중국 국적이 8명으로 가장 많고 대만과 인도, 일본, 싱가포르, 미국 출신이 각각 1명이다. 13명 가운데 10명은 중식·일식·양식 셰프다.
2022년 이후 입사자가 8명으로 외국인 직원의 61.5%를 차지한다. 2024년에만 5명이 입사했다. 파르나스호텔 관계자는 “과거에는 조리 기술과 비법을 전수받기 위한 채용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글로벌 고객 수요에 대응하고 식음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성격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인재 활용 범위 넓어져 AI·자율주행…소싱·사업개발까지 한세실업도 외국인 인재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미국과 스페인, 중국, 러시아, 나이지리아, 키르기스스탄,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직원이 근무한다.
과거에는 해외영업 직무를 중심으로 외국인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해외 바이어와 생산법인을 잇는 역할이었다. 올해는 처음으로 R&D 부문에도 외국인 신입사원을 뽑았고 채용 분야를 디자인까지 확대했다. 제품 판매를 넘어 기획·개발 단계부터 글로벌 트렌드와 다양한 소비자 관점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나이지리아 출신 프로비 마두카 씨는 한세실업 유럽영업팀에서 샘플 작업과 부자재 소싱·발주, 생산 관리를 맡는다. 유럽 주요 바이어와 직접 제조자개발생산(ODM) 사업을 추진하며 부자재 소싱과 샘플 준비, 생산 전반을 담당 중이다.
독립 에이전트를 거치던 방식에서 벗어나 바이어와 직접 거래하는 체계 구축에도 참여했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외국인 직원이 본사와 해외 법인을 연결하며 샘플 제작과 제품 수정 요청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게 됐다”며 “불필요한 확인 과정이 줄고 업무와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LG이노텍은 ‘글로벌 인턴십’ 제도를 통해 외국인 유학생과 해외 인재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전체 매출의 약 95%를 해외 고객에게서 올리는 만큼 글로벌 고객과 해외 법인을 잇는 인력이 필요해서다. 글로벌 인턴십을 거쳐 전장해외마케팅팀에 입사한 아제르바이잔 출신 바바예바 쿄눌 씨는 아제르바이잔어와 한국어·영어·러시아어·튀르키예어를 활용해 고객과 해외 법인을 연결한다. 다국어 능력과 지역 전문성이 마케팅 경쟁력으로 이어진 사례다.
성장·기회 풍부해 韓 찾은 외국인 채용보다 정착…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한국 기업과 외국인 전문인력의 만남은 양쪽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해외 인재는 성장 산업과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한국행을 택했고, 기업은 해외 시장과 AI 경쟁에 필요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인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 인재에게 한국은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미국은 AI 확산과 빅테크 구조조정으로 취업 시장이 위축됐고, 유럽도 공공기관·금융권을 제외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드문 편이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와 AI, 배터리, K뷰티 등 성장 산업이 살아 있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쟁력도 유지하고 있다. 치안과 대중교통 등 생활 인프라에 K팝과 K콘텐츠 등 문화적 매력까지 더해지며 새로운 기회를 찾는 해외 인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세실업의 프로비 마두카 씨는 “한국 기업이 빠른 성장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봤다”며 “국제무역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국가와 시장을 연결하는 글로벌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중 한국 패션 산업에 매력을 느껴 입사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글로벌 고용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한국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쟁력, 성장 산업, K콘텐츠 등 문화적 매력을 함께 갖춘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입장에서도 외국인 전문인력 의미는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 영업이나 통·번역 지원이 주된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AI와 연구개발(R&D), 상품기획, 사업개발 등 핵심 직무를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외 소비자와 시장을 이해하는 현지 전문가가 곧 사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R&D와 디자인 직무에서 외국인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시작한 한세실업, 외국인 직원을 상품 소싱과 사업개발·해외 브랜드 협업 등에 배치하며 역할을 넓힌 신세계디에프 역시 해외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둔 경우다.
다만 외국인이 한국 기업에 들어오는 것과 오래 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외국인 인재들은 취업 과정에서 비자와 정보 부족, 언어 장벽 등을 겪고, 기업 역시 채용 이후 이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이 적지 않다. 한국어 중심의 회의와 업무 시스템, 직무보다 조직 필요에 따라 역할을 바꾸는 인사 관행, 장기 정착을 위한 지원 부족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외국인 인력 역할이 확대된 것은 맞지만, 입사 초기에 한국식 보고 방식과 업무 절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기업 경쟁력이 단순히 외국인을 많이 채용했느냐보다 이들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조직 문화와 체계를 갖췄느냐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는 “한국 기업이 해외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이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인사 체계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업무 방식이다. 대부분 기업은 회의와 매뉴얼, 각종 업무 시스템이 한국어 중심으로 운영된다. 외국인을 채용해도 한국인과 같은 수준으로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이 설계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인사 방식도 장기 근속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 전문인력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한 직무 중심 조직에 익숙하지만, 국내 기업은 조직 운영 필요에 따라 부서를 옮기거나 역할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김석집 대표는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면 의사결정 과정, 평가 방식 등 전반적인 업무 환경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한다”면서도 “해외 인재 역시 한국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과 인재가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있어야 장기적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 역시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직무 중심 인사, 연공서열보다 성과와 전문성을 반영하는 평가·승진 체계, 외국인 직원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회의와 문서 지원 체계 등이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모든 업무를 영어로 운영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이들 외국인이 일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언어 지원과 시스템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기업 노력만으로는 한계도 있다. 취업·연구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외국인이 적응하기 쉬운 주거와 정착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외국인 근로자는 “비자 발급이나 체류 관련 절차에 대해 충분한 안내와 지원이 있다면 한국 생활에 더욱 빠르게 적응하고 업무 역량을 발휘하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년 취업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전문인력 유치에 각종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인재를 보호하는 것과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것은 대립하는 정책이 아니라고 본다. 세계 인재가 모이는 환경을 만들수록 국내 청년도 더 큰 시장에서 경쟁하고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성철 교수는 “글로벌 인재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결국 한국 청년의 경쟁력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문화와 제도가 함께 개선된다면 외국인 전문인력 확보도 장기적인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 야모토 아야코 신한은행 팀장 “일본 기업과 한국 은행 잇는 가교 역할 할 것” 신한은행 외환고객솔루션부 기업외환솔루션Cell에는 일본인 팀장이 있다. 야모토 아야코 팀장이다. 그가 속한 ‘신한 FDI Partners’ 팀은 외국인직접투자(FDI) 고객이 한국에 투자할 때 상담부터 서류 작성, 계좌 개설, 사후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일본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다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 온 그는 일본계 기업을 전담한다. 일본계 기업은 본사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본사에 직접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는 점을 유관기관 일본팀도 높이 평가해 기업을 소개해줄 정도다.
Q. 한국 기업에서 일해보니 어땠나. A. 처음에는 뭐든지 정말 빨리 진행되는 것이 놀라웠다. 속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한은행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데, 그럴 때마다 ‘역시 한국 기업답다’고 느낀다.
Q. 한국 기업 문화, 걱정은 없었나. A. 회식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걱정보다 많지 않았고 참석도 자유로웠다. 한국 드라마에서 본 직장 내 괴롭힘 같은 문화도 걱정했는데, 예방 제도와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어 안심됐다.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동료가 많아 큰 도움을 받는다.
Q.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가. A. 17년 전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이 지금처럼 선진국이라는 느낌은 솔직히 크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 경제는 정말 빠르게 성장했고, 앞으로도 AI나 K콘텐츠 등에서 계속 성장할 것이다. 다만 이직할 때마다 비자를 새로 받아야 해 이직이 쉽지 않다는 외국인 친구가 많다. 부동산 계약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외국인에 대해서는 이런 부분이 개선되면 좋겠다.
인터뷰 | 미나미 레나 스타벅스코리아 슈퍼바이저 “외국인 선 긋지 않아…한국서 성장하고 싶어요” 일본에서 항공사 지상직 승무원,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했던 미나미 레나 씨는 2023년 스타벅스코리아 외국인 공개 채용 1기로 입사했다. 바리스타로 시작한 그는 매장 운영과 업무 조율을 담당하는 슈퍼바이저로 근무한다. “국적보다 역량과 노력을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Q. 맡은 업무는. A. 슈퍼바이저로서 매장 운영 상황을 관리하고 파트너들이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업무를 조율한다. 일본에서 하던 일과 분야·업무가 달라졌지만, 고객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다양한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한 경험이 지금도 도움이 된다.
Q. 한국에서 일하며 인상 깊었거나 만족한 점은. A. 일해보니 한국 기업의 ‘속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빠르게 실행하고, 개선할 부분이 생기면 곧바로 수정하는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고객들 역시 주문 전부터 카드를 내밀고, 동료들도 누가 시키기 전에 미리미리 자기 일을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 회사에서 혼자 느긋해 보일까봐 속도감 있게 일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는 동료와 고객을 매일 만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계를 두지 않고 슈퍼바이저 승진 기회를 받은 점이 감사하다. 국적보다 역량과 노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Q. 외국인 직원으로서 기여한 사례가 있나. A. 사내 교육 영상과 창립 행사, 서울시 잡페어, 사내 매거진 등에 참여해 외국인 파트너의 경험을 알렸다. 일본 스타벅스와 협업한 음료가 출시됐을 때는 한국 스타벅스 공식 소셜미디어에서 제품을 일본어로 소개하는 영상도 촬영했다. 언어와 문화적 강점을 활용해 한국과 일본을 잇는 작은 가교 역할을 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Q.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A. 처음에는 한국어와 사내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동료들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기다려줬다. 서로 배려하고 도와주는 분위기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외국인 파트너 배지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희망자에 한해 각자의 국기 배지를 착용했지만, 회사가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더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외국인 파트너’라고 표시한 공통 배지를 새로 만들었다. 작은 변화지만 근무 환경과 고객 소통까지 세심하게 살핀 조치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 올렉 스마긴 JB금융그룹 대리 “외국인은 리스크 아닌 전략적 자원” JB금융그룹 AX미래성장본부의 올렉 스마긴 대리는 러시아 출신으로 그룹의 디지털자산 신사업 개발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 전략 수립과 파트너십, 해외 송금·결제 사업이 주 업무다. JB금융 합류 전 중동에서 정부기관·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 투자펀드 설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한국어·영어·러시아어·스페인어 4개 언어로 사업 개발부터 계약 협상까지 직접 해온 ‘글로벌 가교’다. 최근 한국 생활 10여년의 경험을 담아 친형과 함께 ‘코리안 드림(The Korean Dream)’을 출간해 교보문고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Q. 왜 한국이었나. A. ‘속도와 성장성’이다. 2014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역사가 큰 영감을 줬다. 이후 KAIST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SK·현대차그룹 인턴십을 하며 한국 기업 특유의 빠른 실행력과 높은 목표 의식을 직접 체감했다. 특히 AI와 블록체인 같은 신산업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장 중 하나다.
Q. 한국 기업에서 일해보니 느낀 점은. A. 방향이 정해지면 실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 요구 기준이 높아 제2·제3외국어로 일하는 외국인에게는 쉽지 않지만, 그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다. 가장 만족하는 점은 금융권에서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신규 사업을 A부터 Z까지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어려운 부분은 한국어 기반의 고맥락 의사소통이다. 다만 외국인이 특별 대우를 받기보다 같은 기준으로 업무를 부여받고 함께 평가받아야 오히려 적응이 쉬워지고 신뢰와 성과가 나온다.
JB금융이 선을 긋기보다 한 명의 전문가로 신뢰하고 동일한 기준에서 업무를 맡기는 것이 가장 큰 배려다. 회장부터 실무자까지 한자리에 모여 3주에 한 번 현안과 전략을 논의하고 직접 피드백을 주고받는 회의 문화도 인상적이었다.
Q. 한국이 해외 인재에게 더 매력적인 나라가 되려면. A. 외국인을 리스크나 부담으로만 보기보다 전략적 자원이자 새로운 기회로 바라봐줬으면 한다. 저출생과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글로벌 인재는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혁신과 성장을 함께 만드는 핵심 자산이 될 수 있다. 열심히 기여하고 잘 적응한 외국인에게 장기적 비전과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력하면 성장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예측 가능한 길이 있다면, 몇 년만 보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인재가 될 것이다. 스포츠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듯, AI 연구자·첨단기술 전문가·창업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각국의 인재가 한국과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김경민·박수호·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2호(2026.08.12~08.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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