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돋보기] 베트남 '목욕탕 의자'와 서울 '달빛야장'…'노점 경제'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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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베트남 구시가지의 아침은 인도(人道) 위에서 가장 먼저 깨어난다. 낮은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 갓 구운 반미(Bánh mì)에 들어갈 고기 굽는 숯불 연기와 쌀국수 냄비가 뿜어내는 뿌연 김이 골목 전체를 자욱하게 감싼다.
오토바이 경적 소리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엉키는 이 북새통은 외지인들에게 베트남만의 이국적인 '길 위의 낭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정겨운 풍경 뒤에는 베트남 경제의 숨은 혈맥인 '노점 경제(Kinh tế vỉa hè)'가 숨어 있다.
GDP 13% 차지하는 '노점 경제'…200만 달러 프랜차이즈 키워낸 '인도(人道)'
베트남에서 인도는 단순한 보행 통로가 아니다. 베트남 통계청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노점상을 포함한 개별 사업 가구가 국가 GDP의 약 11~13%에 해당하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엄연한 '비공식 경제 구역'이다.
호찌민시 도시개발연구소에 따르면 호찌민시에만 약 2만 개의 노점 음식점과 2만 5천 명의 종사자가 인도를 터전 삼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인도는 소규모 상인들의 생계 수단이상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길거리 손수레 8대로 시작해 연 매출 200만 달러(약 27억 원), 전국 500개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반미 브랜드 '반미 마하이(Bánh mì Má Hải)'는 인도 위의 노점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사업을 창출할 잠재력을 지닌 곳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이 강력한 생명력의 '노점 경제'는 늘 공권력과의 숨바꼭질을 반복해 왔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인도는 오직 교통 목적이며, 영업 행위는 불법이다. 아직까지 도시질서 관리팀과의 마찰, 단속, 수수료 갈등은 상인들의 일상이다.
"인도는 보행자의 것"… 호찌민·하노이의 대대적 단속과 양성화 진통
최근 베트남 주요 대도시들이 "보행권 확보와 도시 미관 및 질서 개선"을 내세우며 이 노점 경제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규제하려는 대대적인 수술에 착수했다.
호찌민시는 2024년 상업 활동을 포함한 특정 용도에 한해 보도 및 도로 사용료를 일시적으로 징수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문화 행사와 공공 편의 시설, 일부 노점상 영업을 양성화하며 약 70억 동(약 3억 6000만 원)의 세수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2025년 초 새로운 '도로법' 및 '도로교통질서안전법'이 시행되면서 법적 틀에 맞춘 운영 모델 재검토를 위해 해당 제도가 전면 중단된 상태다. 현행 법 규정상 인도를 일시 사용할 수 있는 허용 기준이 ▲행사 개최 ▲건설 현장 지원 ▲자재 운송 ▲주차 ▲장례식 ▲결혼식 등 6가지 특정 목적에만 한정되어 있어, 상업 및 무역 목적의 보도 점용은 법적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법적 공백 속에서 당국의 단속 칼날은 매서워졌다. 호찌민시 공안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5월 18일까지 도시질서 위반 행위 3만 3000여 건을 적발해 290억 동(약 15억 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했다. 호찌민시는 향후 불법 점유 단속을 이어나가는 한편, 야시장 및 푸드 스트리트 조성, 상업 지구 집중화 방안 등을 연구해 주민 생계와 도시 미관을 동시에 잡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베트남 국민들의 오랜 생활 방식이자 터전인 '길 위의 삶'을 단칼에 잘라내기는 쉽지 않다. 시민들의 편의와 노점상들의 생계가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서다.
이에 따라 당국도 단속 일변도에서 벗어나 불법을 뿌리 뽑되 양성화하는 시범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하노이시는 주요 지역의 보도 및 차도 일부를 유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 조례안을 마련했다. 1㎡당 월 4만 5000동의 점용료를 내고, 주요 교통 혼잡 지역에서 벗어나 있어야하며 1.5m 이상의 최소 보행 공간 확보, 주변 상인·주민 50% 이상의 동의 등 엄격한 준수 사항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현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질서가 정돈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단속으로 생계가 막힌 한 현장 상인은 "법과 질서도 좋지만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현실적인 양성화 기준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란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비행기 5시간 거리 서울의 '야장'… 닮아있는 '길 위의 갈등'
길 위의 공간과 노점 경제를 둘러싼 진통은 한국 서울의 밤거리에서도 정확히 반복된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보도를 점유해 테이블을 깔고 낭만을 파는 서울의 '야장(야외 테이블)' 문화는 베트남의 '목욕탕 의자'와 닮아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종로3가 등이 K-야장의 성지로 떠올랐지만, 그 이면에는 극심한 민원이 존재한다. 서울시에 접수된 옥외영업 관련 민원은 2020년 3054건에서 지난해 6603건으로 5년 만에 116% 급증했다. 무신고 영업과 보도 무단 점유, 밤샘 소음이 주원인이었다.
이에 서울시 역시 무조건적인 단속 대신 '상생형 제도화'를 선택했다. 중랑구 상봉먹자골목의 상생협약 모델을 차용해 건대맛의거리, 세로수길 등을 '달빛야장'으로 지정하고, 영업시간과 소음 관리 수칙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길 위 장사를 허용하고 있다.
인도 위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하루를 달래는 문화 공간이자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생계 현장이며, 보행자에게는 안전하게 걸을 권리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장소다.
베트남과 한국 모두 '단속과 방치'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생계를 보장하며 보행권을 지키는 '지속 가능한 길 위의 질서'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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