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베트남 얼굴기형 아동돕기… K성형 열풍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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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5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175군(軍)병원에 한국 성형외과 의사들이 모여들었다. 1996년부터 올해로 31년째 이어가는 구순구개열(口脣口蓋裂) 등 얼굴기형 베트남 아동들을 위한 무료수술을 위해서다. 이른바 ‘언청이’ ‘토순이’ 등 비칭(卑稱)으로 알려진 구순구개열은 태어날 때부터 입술(구순)과 입천장(구개)이 찢어진 안면기형의 일종이다. 구순구개열이 있는 아동들은 치아 교합이 맞지 않아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체격이 왜소하고, 남과 다른 얼굴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돼 사회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날 한국 성형의들이 호찌민의 175군병원을 찾는다는 소식에 병원 본관과 신관 현관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는 한국 의료진을 환영하는 메시지가 내걸렸다. 안면기형을 가진 베트남 환아와 부모들도 병원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베트남 국방부 소속인 175군병원은 한국 건축설계사인 희림건축이 설계한 1500병상을 갖춘 대형병원이다. 의료시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베트남에서는 좋은 의료시설을 갖춘 몇 안 되는 병원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베트남 의사도 아닌 세계 최고 실력을 가진 한국 의사들로부터 무료수술을 받는 기회를 잡기란 하늘에 있는 별 따기와 같다.
이날 병원 신관에 마련된 2번 수술방 첫 환자로 온 올해 5세 베트남 남아는 입천장이 찢어진 구개열로 제대로 음식을 씹어 삼킬 수가 없었던 탓인지 새까만 얼굴에 비쩍 마르고 앙상한 티가 역력했다. 심지어 입안에 붙어 있어야 할 치아 하나는 입천장을 뚫고 왼쪽 콧구멍 안으로 솟구쳐 있었다. 입에 남아있는 앞니 한 개 역시 시커멓게 썩어서 곧 제거가 필요해 보였다. 남은 앞니 하나마저 제거하면 영구치가 솟아오르기 전까지는 치아가 빠진 노인처럼 틀니를 착용하거나 당분간 이가 아닌 잇몸으로 음식을 씹어 삼켜야 할 판이었다.
이날 중국 충칭과 광저우에서 성형의로 활동하는 하동호 원장은 최종윤 서울성모병원 성형외과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수술팀과 함께 “아가야, 아저씨가 안 아프게 잘 고쳐줄게” 하는 말과 함께 수술장갑을 끼고 메스를 들었다. 1시간여 수술 후 콧구멍 속에 솟아나와 있던 치아는 ‘딸그락’ 소리와 함께 제거됐고, 갈라진 입안은 봉합사로 말끔히 꿰매졌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를 이끄는 백롱민 박사(전 분당서울대병원장)를 따라 2000년부터 25년 넘게 베트남 얼굴기형돕기에 매년 참가 중인 하동호 원장은 수술을 마친 후 “애정은 언제든 식을 수 있으니 애정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라며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한다”고 웃음을 지었다.
같은 시간, 1번 수술방에서도 김백규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의 집도로 8세 베트남 남아의 구순열 수술이 시작됐다. 같은 병원 김종호 교수는 “이제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국내에 많이 남아있지 않다”며 “김백규 교수의 솜씨는 가히 국내 최고”라고 했다. 1시간가량의 수술을 견뎌낸 남아는 수술이 끝나자 마취가 조금 일찍 풀렸는지 우렁찬 소리로 포효하면서 깨어났다. 제자들이 수술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백롱민 박사는 “마취 깰 때 버릇이 나중에 술 깰 때 버릇과 비슷하다던데, 이 녀석 나중에 잘 크겠다”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30년간 베트남 얼굴기형 무료수술 이처럼 아직 의료환경이 열악한 베트남에는 적절한 시기에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지 못해 어릴 때부터 나이가 들도록 얼굴기형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1986년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 도입 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병원 하드웨어 자체는 상당히 개선된 편이다. 이번에 한국 의료진이 찾은 호찌민 175군병원은 백롱민 박사가 친형이자 스승인 한국 성형외과 개척자 고(故) 백세민 박사와 함께 1996년부터 베트남 얼굴기형돕기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래 하노이의 108중앙군사병원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갔던 병원이다.
“시골병원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하던 호찌민 175군병원은 세월이 흘러 한국의 여느 대학병원 못지않게 시설이 잘돼 있고 쾌적했다. 섭씨 19도로 유지되는 서늘한 수술실 외벽에는 긴 수술 중 이른바 ‘노동요’를 들을 수 있도록 최첨단 월패드가 부착돼 있었고, 과거와 달리 개인용 가방과 신발 등 일체의 수술실 반입을 막을 정도로 감염병 관리도 철저했다.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 베트남 병원 수술실에 바퀴벌레가 오가서 기겁한 적이 있다”며 “예전에는 전력사정도 안 좋아 수시로 정전이 돼서 모니터를 절대 믿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에어컨이 빵빵해 오히려 추울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베트남 개개인들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 1인당 명목GDP(국내총생산)가 5000달러(2025년 기준) 선에 머무는 베트남 사람들로서는 수술·입원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구순구개열 수술만 해도 수술에 필요한 약재비와 입원비 등을 포함해 1인당 줄잡아 12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수술을 위해 생업을 접고 호찌민 등 대도시 병원까지 찾아오는 비용도 부담이다. 이번에는 일부 환자들이 홍수로 발길이 묶이고, 환절기에 감기까지 유행하면서 수술대상으로 선별한 70명 중 절반 가까이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일주일간의 봉사활동 기간 중 새 얼굴을 찾은 베트남 환아는 36명. 백롱민 박사는 “경미한 감기라도 수술 중 마취가 위험해질 수 있다”며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단을 이끄는 백롱민 박사가 주축이 된 세민얼굴기형돕기회는 1996년부터 SK그룹의 후원을 받아 지금까지 4300여명에 달하는 베트남 안면기형 환아들의 새 얼굴을 되찾아준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디엔비엔푸전투(1954)에도 참가한 베트남군 군의관 출신으로 ‘인민의사’로 불린 응우옌후이판 전 베트남군 의무사령관과 베트남전쟁 와중 ‘파리평화협정’(1973) 체결 때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대표해 참가해 ‘마담 빈(Binh)’이란 이름으로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진 여성외교관 응우옌티빈 전 국가부주석(전 베트남 아동보호기금 주석) 등의 전폭적 신뢰도 힘이 됐다.
특히 응우옌후이판 장군은 베트남 얼굴기형 수술을 위해 한국에서 대량의 수술물품을 들여오다 공항에서 통관이 막힐 때면 이를 직접 풀어주는 등 많은 편의도 베풀었다. 베트남 의료사정이 많이 개선돼 현지 조달비율이 높아졌다지만, 지금도 수술에 필요한 수술도구와 의약품 공수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일부 소도시 공항에서는 물품반입에 트집을 잡아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덕분에 한국 성형의들의 베트남 얼굴기형 무료수술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출입국 자체가 불가능했을 때와 지난 윤석열 정부 때 의정갈등으로 국내에 의료공백이 생겼을 때를 제외하고는 지난 30여년간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K-성형 열풍으로 이어진 의료봉사 한국과 베트남 양국 의료진의 협력으로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이어진 이 같은 미담(美談)이 인구 1억명 베트남 사회에 심은 K-성형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베트남 얼굴기형돕기 봉사에 앞선 지난 10월 3일과 4일에는 호찌민 175군병원을 비롯해 홍방대학교 병원, 레반틴병원 등지에서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와 베트남미용성형외과학회를 비롯 한국미용의료기술협회(KBIT),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 성남산업진흥원(SNIP),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공동 주최한 ‘K-뷰티 선진기술 트레이닝(K.A.T)’ 등의 행사도 개최됐다.
특히 500병상을 갖춘 호찌민 레반틴병원에서는 한국의 최신 성형시술 생중계도 이어졌다. ‘베트남 공산당 만세’라는 붉은 슬로건이 내걸리고, 왼쪽에 호찌민 주석의 흉상, 오른쪽에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내걸린 병원 강당에 설치된 화면으로는 병원 한편에 있는 ‘KBIT(한국미용의료기술) 센터’에서 한국 의사들이 각종 시술을 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동서양의 대표적인 공산혁명가들이 굽어보는 가운데, 자본주의 의료의 꽃으로 불리는 성형시술을 소개하는 기묘한 장면이었다. ‘위대한 호찌민 주석을 본보기로 학습하라’는 슬로건이 무색할 만큼 이제 베트남 의대생들은 한국 성형의를 모델로 학습하고 있었다.
이날 부산에서 온 미국 국적 한국인 성형의 송제니퍼 송제니퍼성형외과 원장은 홍방대 의대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실리프팅 시술에 나섰다. 송제니퍼 원장이 유창한 영어 설명과 함께 환자의 얼굴 측면에 세 개의 작은 구멍을 뚫은 뒤 리프팅실이 장착된 장침을 얼굴 피부 아래로 끼워넣자 강의장 내가 일순 술렁였다. 구멍으로 빠져나온 실을 탱탱하게 잡아당겨 재빠른 손놀림으로 매듭짓자 절로 탄성도 터졌다. 이후 몇 번의 바느질이 환자의 얼굴을 꿰뚫고 이어지자 축 늘어졌던 환자의 얼굴은 탱탱하고 탄력 있는 얼굴로 거듭났다. 한국 국적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홍방대 의대 1학년에 재학 중인 유모 학생은 한국 성형의들의 시술 장면을 지켜보면서 “나도 장차 피부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 의료기기에 대한 관심으로 이날 레반틴병원과 별개로 홍방대 병원 수술실에서도 서울 강남의 물방울성형외과 이영대 원장이 30대 여성 환자의 유방확대 수술을 직접 집도했다. 아직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낮고 채식 위주인 베트남에는 작고 빈약한 가슴을 가진 여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외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유방확대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급증했다는 것이 현지 의료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유방확대술은 몸매의 굴곡이 드러나는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의 여성적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한국 성형의 면허와 함께 베트남 성형의 면허를 동시보유한 몇 안 되는 의사인 이영대 원장은 직접 메스를 잡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환자의 가슴을 절개하고 보형물을 삽입했다. 수술에 걸린 시간은 대략 45분. 이내 환자의 가슴은 어느새 봉곳한 물방울 모양으로 솟아 올랐다.
이와 별개로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서 더플러스성형외과를 운영하는 김택균 원장이 개개인의 코 형태에 맞춰서 ‘3D프린팅’으로 제작한 보형물을 코에 삽입하는 주제발표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베트남에서 ‘강남’은 세계 최대 미용성형 격전지이자, 세계 성형기술을 선도하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노이와 호찌민 등 베트남 전역에 네트워크를 갖춘 베트남 최대 성형외과의 이름이 ‘강남성형외과’일 정도다. 자연히 주제발표 후에는 ‘3D프린팅’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등에 관한 현지 관계자들의 질문도 쇄도했다. 외국어 통역만 6명을 두고 있는 김택균 원장은 “요즘은 한국인 환자보다 외국인 환자들이 더 많이 찾는 것 같다”며 “코를 높이고 턱을 깎는 데 관심이 많은 동양인과 달리 서양인들은 코 높이를 낮추고, 턱을 늘려 강인한 턱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K-성형에 대한 막대한 관심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의료기기 수출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행사에서도 ‘민트’ 브랜드 리프팅실로 유명한 코스닥 상장사 ‘한스바이오메드’를 비롯, 유방확대 수술 후 착용하는 압박브라 등을 선보인 ‘닥터브레스트’, 권총 형태의 보톡스, 필러 인젝터(주사기)를 선보인 ‘메디허브’ 등 한국 의료기업들이 전시부스를 꾸렸는데 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레반틴병원에서 60대 베트남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메디허브’ 인젝터로 보톡스 시술을 선보인 닥터리메이드의원 이정훈 원장은 “보톡스는 자칫 과량 주입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총모양 인젝터는 소수점 두 자리까지 정확한 용량을 주입할 수 있어서 처음 개원하는 의사들에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후원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화장품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아직 의료진과 의료기기 중 상대적으로 의료진의 수준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며 “의료진을 앞세워 의료기기 수출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와 함께 행사를 공동주최한 레 한 베트남미용성형외과학회 이사장은 “한국은 미용기술 분야를 지속적으로 선도하며 미용성형외과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꾸고 있다”며 “공동 임상경험 공유와 교육 등을 통해 미용과 의학 전반에 걸쳐 양국 간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허찬영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도 “베트남 의료계는 놀라운 속도와 열정으로 발전하고 있다”라며 “한국과 베트남의 연대가 미용의료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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