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의 창] "한글학교는 아이들 정체성 찾는 '꿈의 산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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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20년째 베트남 한인 2세 보듬은 김규 사이공 한글학교 교장"교육의 시작은 엄마부터"…베트남 어머니 80명, 한글·한국 문화 배워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글학교는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차세대 아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돕는 '꿈의 산실'입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20년째 한인 2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 온 김규(66) 사이공 한글학교 교장은 지난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글학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구촌 한글학교 미래포럼' 주최 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김 교장은 "차세대들이 미래를 개척하도록 돕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자 미래를 위한 가치투자"라고 강조했다.
1994년 상사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첫발을 디딘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본사의 철수 명령에 회사를 그만두고 현지에 남았다. 2000년 투자무역회사를 설립한 데 이어 출판업과 환경사업으로 영역을 넓혔고, 호찌민 한국국제학교의 설립 이사와 장학위원으로 참여하며 한인 자녀 교육에 힘을 보태왔다.
그는 2008~2022년 국립베트남대 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했으며, 호찌민한인회장과 베트남한인총연합회장, 아시아한글학교협의회장, 민주평통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호찌민인민위원회 산업공단자문위원, 인천광역시 국제자문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가 사이공 한글학교를 설립한 것은 2006년이다. 당시 베트남에는 한국 기업의 진출과 함께 현지인 여성과 결혼한 가정이 늘어났지만, 이들 자녀를 위한 한국어 교육기관은 마땅치 않았다.
이들은 한국 국적을 가졌음에도 현지 학교에 다니다 보니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해 한국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고 정체성 혼란도 겪었다.
김 교장은 "당시 베트남 거주 한국인은 약 10만 명, 한·베 가정도 3천여 가구에 달해 아이들이 아버지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학교가 절실했다"며 "한인 2세 교육 문제를 둘러싸고 한 학부모와 호찌민 총영사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외교당국의 요청을 받아 설립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이공 한글학교 설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 교장은 "학교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했지만, 비용을 부담하며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며 "무료 교육기관이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다"고 털어놨다.
재정난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 전체 예산에서 재외동포청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체 조달해야 한다.
이에 세종학당과 협력해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준비하는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경북도와 충남도의 위탁을 받아 한국 취업 예정 근로자들을 교육하는 등 자체 수익사업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김 교장은 현재 베트남의 한국어 교육 환경이 외국어 측면에서는 잘 갖춰져 있지만, 한인 자녀들이 뿌리를 배우는 '계승어' 교육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베트남에는 세종학당 12곳과 한국어학과가 설치된 대학 35곳, 한국국제학교와 한국교육원도 있지만, 한인 자녀의 정체성을 이어주는 한글학교는 5곳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학교는 수녀, 주재원 가족, 재외동포 등 뜻을 함께한 자원봉사 교사들의 헌신으로 유지되어 왔다.
수업은 평일 베트남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배려해 주말과 방과 후 과정으로 운영하며, 한국 정부의 재외국민 교육자료 등을 활용한다.
교육 내용도 한글과 한국어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 충효 교육을 비롯해 한국 방문과 문화 체험 등으로 확대했다.
특히 김 교장이 중시하는 것은 단순 언어 습득을 넘어선 정체성 교육이다.
그는 "정체성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성장하는 이야기"라며 "아이에게 하나의 정체성을 강요하기보다 뿌리를 이해하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아버지 나라 및 일터 방문, 3세대(조부모·부모·자녀) 체험, 명절 행사와 글짓기·말하기 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교사 역량을 높이기 위한 연수와 워크숍, 학부모와의 소통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가정 언어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해 베트남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엄마 반'을 주중에 운영하는 점도 이 학교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김 교장은 "모든 어린이 교육의 시작은 엄마"라며 "어머니들이 먼저 한글과 한국 문화를 배워 가정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현재 80여 명이 수강 중"이라고 소개했다.
설립 당시 25명이던 학생 수는 현재 120명으로 늘었고,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만 1천370명에 달한다.
김 교장은 한인 가정 자녀들이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며 성장한다는 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평가했다.
"베트남의 우리 아이들은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모두 품고 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사회의 주변이 아닌 중심에서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치도록 돕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자 제 마지막 소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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