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에서 시작된 공부, 베트남에 한국학과를 세우다 -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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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yosu
업데이트 2026.10.13 08:26 입력 2026.10.13 08:25 댓글 0 글자크기 설정
기사의 본문 내용은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트남·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 현지 연구자가 말하는 ‘한국학의 오늘’ 케이팝과 드라마로 시작된 동남아시아의 한국 열기는 이제 대학 강의실과 연구소, 초·중등 교과서로 옮겨 가고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인기가 곧 한국학의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어학 편중, 신입생 감소, 교원과 자료 부족은 여전한 과제다. 교수신문은 베트남·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와 연구자 4명의 기고를 싣는다. 문학 연구자의 학과 설립기, 연구 허브 구축, 국제경영 융합 실험, 문화 번역의 강의실까지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현지 연구자의 시선으로 동남아시아 한국학의 현재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짚어 본다. 이번 특집은 장수희 천하제일연구자대회 기획위원이 기획하고 진행했다. <편집자주>
영남대 유학에서 배운 ‘연구자의 생활방식’… 스물여덟에 한국학과장으로
초·중등 한국어 교과서 심의부터 생성형 AI 번역 연구까지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한국계 공장에서 2년 동안 통번역사로 일했다. 당시 한국어는 내게 무엇보다 취업하고 생활을 꾸려 갈 수 있게 해 주는 언어였다. 그러던 중 대학 졸업논문 심사위원이었던 은사님이 “공장에서 일만 하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한국문학과 시를 더 공부해 보라”며 영남대학교 유학을 권하셨다.
대학원 생활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한국인 연구자들의 발표와 토론을 온전히 따라가기에는 전공 한국어도, 한국문학사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다. 방법은 하나, 읽고 또 읽는 것이었다. 교수님들은 문학사의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게 했고, 매주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이해했는지 확인해 주었다.
한편 수업에서는 Vũ Trọng Phụng의 『Số đỏ』를 통해 식민지 시대 베트남 사회를 소개하고, Trịnh Công Sơn의 반전음악과 그 시대의 배경을 발표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을 배우는 동시에 베트남을 설명하면서 두 사회 사이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유학 기간 동안 여행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공부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긴 여행이었다. 기숙사에서 강의실로, 강의실에서 도서관으로, 다시 연구실로 가는 생활이 대부분이었다. 영남대학교에서 배운 것은 한국문학에 관한 지식만이 아니었다. 자료를 찾고, 오래 읽고, 질문을 만들고, 그것을 글로 검증하고 다시 쓰는 연구자의 생활방식 자체를 배웠다.
두 언어 사이에서 질문을 만들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내가 처음 만난 한국문학 작품이었다. 지금처럼 검색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던 시절, 종이사전을 펼쳐 놓고 시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종이에 적었다. 그때의 메모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님’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부처일 수도, 조국일 수도 있었다. 번역은 단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한 사회가 언어 속에 축적해 온 정서와 의미가 다른 언어와 문화 안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해석과 재구성의 과정이었다.
김소월의 민요시를 공부할 때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베트남 시인 Nguyễn Bính이 떠올랐고, 이것이 석사논문의 출발점이 됐다. 박사과정에서는 한용운과 베트남 근대시 전환기의 Tản Đà를 함께 연구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유사한 문학적 문제의식이 어떻게 다르게 형상화되는가. 관심은 두 문학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한 문학을 다른 사회의 시선에서 읽을 때 어떤 새로운 질문이 생기는가. 두 언어와 두 문학 사이에서 질문을 만드는 것이 나의 연구 방법이 되어 갔다.
스물여덟 학과장, 다시 학생이 되다 2007년 말 베트남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어와 한국학을 배우려는 학생은 빠르게 늘고 있었지만 전문 교원과 학과를 운영할 인력은 매우 부족했다. 스물여덟 살의 나는 홍방국제대학교 한국학과 학과장을 맡았다.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교재와 교원을 확보하며, 한국 대학·기관과 관계를 만들어 장학금과 교류 기회를 찾아야 했다.
걱정이 많았고 혼자 시작해야 하는 일도 적지 않았지만, 베트남에 부족한 것이 보인다면 한국에서 배운 것과 내가 가진 관계로 조금이라도 채워 보고 싶었다. 하나의 연락이 협약으로, 하나의 제안이 학생의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의 질문도 ‘한국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베트남에서 한국학은 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로 넓어졌다. 학과 운영은 연구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또 다른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 질문은 대학의 울타리를 넘었다. 2021년부터 한국 교육부 지원 아래 베트남 교육 당국, 하노이국립대 외국어대학과 함께 초·중등학교 한국어 교재 개발에 참여했고, 베트남 교육부 제1·제2외국어 한국어 교과서 국가 심의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장을 맡았다.
한국어 교육의 현지화는 한국의 교재를 옮겨 오는 일이 아니라, 베트남의 교육과정과 학습자의 현실 속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재구성하는 문제다. 최근에는 초·중등 교육과정의 제1·제2외국어 한국어 교육 내용 제안에도 참여하고 있다.
문학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작품을 번역하는 사람에서 한국문학 번역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한국 작가들을 인터뷰해 베트남 독자에게 소개했다. 젊은 번역가들과 작품을 함께 읽고 번역을 검토하며 내가 배운 방법을 나누고 있다.
2017년 호치민기술대학교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 뒤에도 교육과정을 만들고 한국의 대학과 기관을 연결하는 일은 계속됐고, 2023년에는 한글 발전 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최근에는 생성형 AI와 코퍼스를 활용해 한국문학 원문과 여러 베트남어 번역을 비교·분석하고 있다. 종이사전에서 생성형 AI까지 도구는 달라졌지만 질문은 같다. 이 문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른 언어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인가. 기술이 발전할수록 작품을 깊이 읽고 번역의 선택을 판단하는 인간의 역할을 더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나는 인도 정부 지원 교수 역량 강화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 거의 18년을 가르쳤지만 이곳에서는 영어로 강의를 듣고 질문하는 학생이다. 서로 다른 나라의 교수·전문가들과 대학 교육과 국제협력을 이야기하며 내가 알던 대학의 세계가 다시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한국에서 시작된 배움이 베트남에서 실천이 되었고, 그 경험이 다시 나를 더 넓은 학문공동체로 데려가고 있다. 예전에는 더 많이 읽고 쓰고 일해야 좋은 연구자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래 연구하고 가르치려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법,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배우는 용기도 필요하다. 스물몇 살의 나는 종이사전을 펼쳐 놓고 한용운의 시 한 문장 앞에 오래 앉아 있었고, 지금의 나는 인도에서 영어로 강의를 들으며 다시 모르는 것을 적는다.
도구도, 언어도, 서 있는 장소도 달라졌지만 배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은 그대로다. 한 편의 시에서 시작된 나의 공부는 그렇게 한국학을 지나 더 넓은 세계로 이어지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부이 판 안트 호치민기술대학교 한국학부 학부장 영남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시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베트남 비교문학, 한국문학 번역·교육, 한국학 교육과정을 연구하며 한국문학 번역가와 한국어 교원 양성에 참여하고 있다. 2023년 한글 발전 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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