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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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장가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사이, 베트남 영화관은 정반대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박스오피스는 역대 최고치를 새로 쓴 반면, 같은 기간 한국 극장 매출은 코로나 이전의 절반 수준까지 주저앉았다. 스마트폰과 OTT에 밀려 발길이 뚝 끊긴 한국과 달리, 베트남에서는 로컬 영화가 높은 완성도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CGV베트남이 지난 3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그 온도차가 확연하다. 지난해 베트남 전체 박스오피스 매출은 5조5,930억 동(약 2,901억5,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24% 성장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35% 이상 불어나며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티켓 판매량도 7,000만 장을 넘기며 29% 늘어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어떨까. 알스퀘어리서치센터가 낸 '2026 영화관 마켓 리포트'를 보면, 지난해 한국 영화관 매출은 1조470억 원으로 2019년(1조9,140억 원)의 절반 수준까지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관객 수도 2억2,600만 명에서 1억600만 명으로 반토막 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문화 행사 직접 참여율이 60%로 전년보다 2.8%포인트 빠졌는데, 그중에서도 영화 관람이 6.4%포인트 줄어 낙폭이 가장 컸다. 대신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비율은 72%까지 올라갔다. 극장을 찾던 발길이 그대로 손바닥 안 화면으로 옮겨간 셈이다.
베트남의 반등을 이끈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국 영화다. 2016년만 해도 전체 매출의 25%에 그쳤던 로컬 영화 비중은 지난해 62%까지 뛰어올랐다. 지난해 개봉한 베트남 영화는 314편으로 전년보다 17% 늘었고, 로컬 영화 매출만 3조4,000억 동(1,763억8,100만 원)을 넘어서며 2018년 베트남 영화시장 전체 매출을 웃돌았다.
CGV베트남은 로컬 영화의 강세의 이유를 코로나 이후 달라진 관객의 구매 습관에서 찾는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가 70~75%를 차지하며 시장을 좌지우지했지만, 할리우드 파업과 제작 차질로 외화 공급이 끊기다시피 하자 관객들이 대안으로 로컬 영화관에 발을 들였고, 그렇게 형성된 팬층이 그대로 눌러앉았다는 설명이다. 콘텐츠 자체도 확실히 좋아졌다. 로컬 영화 한 편당 평균 매출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80억 동(9억3,300만 원) 수준에 머물렀는데, 2023~2025년에는 600억 동(31억1,26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렇다고 베트남 극장가가 다 큰 시장인 것은 아니다. 베트남인의 연간 1인당 평균 관람 횟수는 지난해 0.7회로 코로나 이전(0.5회)보다는 늘었지만, 말레이시아(1회)나 싱가포르(1.3회)와 견주면 여전히 한 뼘 모자란다. CGV는 이 수치가 1회를 넘고 연간 티켓 판매량이 1억 장 선을 뚫으면, 베트남이 세계 영화 관람 상위 10개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파이가 커지는 만큼 그늘도 짙어졌다. 지난해 개봉작의 70%가 매출 500억 동(25억9,380만 원) 문턱조차 넘지 못해,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회수하지 못한 영화가 수두룩했다.
시장 구조로 눈을 돌리면 한국계 멀티플렉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박스오피스베트남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CGV가 45% 안팎의 점유율로 84개 영화관·482개 스크린을 거느리며 부동의 1위를 지켰고, 롯데시네마가 26%로 이를 뒤쫓고 있다. 그 뒤를 갤럭시시네마(10%)와 베타시네마(8%), BHD스타시네플렉스(5.5%)가 바짝 쫓는다.
여기에 새 얼굴도 등판했다. 일본 이온엔터테인먼트가 현지 업체 베타미디어와 손잡고 '이온베타시네마' 간판을 내걸고 지난해 12월 하노이에 1호점을 열었다. 2035년까지 50개 클러스터, 최대 2억 달러를 쏟아붓겠다는 청사진이다. 이에 대해 이온 측은 "베트남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서며 일본 규모에 근접했고, 젊은 인구구조와 탄탄한 경제성장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고 진출 배경을 밝혔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이 시장의 무게감을 실감할 만한 장면이 있었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호프'는 지난 4일 베트남에서 개봉했는데, 감독과 배우 황정민·조인성·정호연이 그에 앞서 1~2일 베트남을 찾아 현지 프로모션을 소화했다. 지난 9일 개막한 북미 프로모션(7~15일, 뉴욕·LA 등)보다도 앞선 일정으로, 베트남이 이 영화의 첫 해외 현지 프로모션 무대였던 셈이다. 칸·토론토·산세바스티안 등 유수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된 화제작이 첫 발걸음을 뗀 곳이 베트남이라는 점은, 이 시장을 향한 콘텐츠 업계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 자본이 잇따라 몰려드는 배경에는 숫자로 확인되는 베트남의 성장 체력이 있다. 베트남 통계국(NSO)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8.02%로 주변국을 압도했고, 소매판매도 전년보다 9%대 늘며 견조한 내수를 뒷받침했다. 인구구조도 젊다. 베트남의 중위연령은 33~34세로 한국(46.7세)보다 10살 넘게 젊고, 생산가능인구(15~59세) 비중도 62.7%에 달한다. 극장을 채울 젊은 소비층과 그들의 씀씀이가 함께 커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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