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건설산업 뉴 패러다임 CM- 시대적 소명을 묻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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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ikld
내년 CM제도 도입 30주년을 맞아 전문가 기고를 통해 CM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 상황을 점검, 미래 발전방안을 들어본다. ‘건설산업 뉴 패러다임 CM- 시대적 소명을 묻는다’ 주제로 온정권 (주)무영씨엠건축사사무소 회장의 기고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한국이 해방 이후 걸어온 길은 인류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야기다. 1953년 한국전 정전 직후의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세계 최빈국이었다. 국토는 잿더미가 됐고, 나라 살림은 미국과 유엔의 원조에 절대적으로 기댔다. 이 시기 정부는 원조로 들어온 원료를 가공해 밀가루·설탕·면직물을 만드는 이른바 ‘삼백 산업’으로 근근이 자립의 밑거름을 쌓았을 뿐이다.
전환점은 1962년이었다. 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가동하며 수출 주도 산업화의 시동을 걸었다. 문제는 종잣돈이었다. 자본도 자원도 없던 나라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청구권 자금, 서독으로 떠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송금한 외화, 그리고 베트남 파병으로 얻은 특수를 밑천 삼아 투자 재원을 마련했다. 여기에 ‘교육입국’으로 길러낸 근면한 인적 자원이 더해지면서, 가발과 섬유를 만들던 경공업은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계기로 철강·조선·석유화학·자동차 산업으로 빠르게 고도화됐다.
이 도약의 물리적 통로를 연 것이 건설이었다. 1968년 착공해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을 하루 생활권으로 묶으며 국토를 하나의 경제 단위로 통합한 대동맥이 되었고, 같은 해 첫 삽을 뜬 포항종합제철(1973년 1기 준공)은 ‘산업의 쌀’인 철강을 국내에서 조달할 길을 열었다. 성장의 엔진을 얹을 차체가 이때 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련도 있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는 유가를 네 배 가까이 끌어올리며 비산유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위기는 뜻밖의 기회가 됐다. 오일머니로 넘쳐나던 중동이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나서자 한국 건설업체들이 그 시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1976년 현대건설이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건설로 불렸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는 오일쇼크가 부른 국제수지 위기를 방어했을 뿐 아니라 중화학공업을 키우는 재원으로 되돌아왔다. 1979년 제2차 오일쇼크의 충격 속에서도 이 해외 건설 특수는 한국 경제를 지탱한 버팀목이었다.
이렇게 다져진 토대 위에서 한국 경제는 1980년대 후반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을 타고 다시 도약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그 성과를 세계에 각인했다.
이후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그리고 주요 시장과의 잇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거치며, 한국은 마침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세계적 무역 강국으로 올라섰다. 이 거대한 압축성장의 서사 속에서, 다른 산업이 성장의 ‘엔진’이었다면 그 엔진을 얹고 달릴 물리적 '차체(토대)'를 실제로 지어 올린 산업이 바로 건설업이었다.
경제성장은 한국인의 주거 양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산업화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리며 주택난이 국가적 난제가 되자, 건설업은 한정된 토지에 다수를 수용하는 ‘아파트’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1962년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1971년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고층 아파트도 중산층의 선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아파트는 점차 근대적 생활의 상징이자 새로운 주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의 대량 공급을 뒷받침한 제도적 장치가 택지개발지구였다. 1980년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을 근거로 정부는 도시 외곽의 넓은 땅을 한꺼번에 사들여 기반시설과 함께 대규모 단지를 조성했다. 1980년대 개포·고덕·목동·상계 등지에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가 그 산물이며, 이 공영개발 방식은 짧은 시간에 방대한 주택을 쏟아내는 ‘한국형 대량 공급’의 틀이 됐다.
그 정점이 노태우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이었다. 급등하는 집값과 주택난에 대응해 정부는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내걸고, 1989년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조성을 발표했다. 1991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 신도시들은 규격화·표준화된 대량 생산 공법과 함께, 아파트를 명실상부한 국민 주거의 표준으로 완성했다. 200만 호 공약은 계획보다 앞선 1991년 말 214만 호로 조기 달성됐다.
그 결과는 오늘의 통계로 확인된다. 국토교통부의 ‘2025 주택업무편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가구는 약 2,300만 가구에 이르며, 이 가운데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가 1,202만(53.9%)으로 가장 많다. 단독주택 거주 가구가 618만(27.7%), 연립·다세대가 246만(11.0%)으로 뒤를 잇는다. 아파트 거주 비중은 2015년 48.1%에서 꾸준히 높아졌으며, 1인 가구가 전체의 36.1%를 차지하고 평균 가구원 수가 2.19명으로 줄어드는 가구 구조의 변화 속에서도 아파트는 여전히 압도적인 주거 형태다.
그러나 한 세대 전에 쏟아진 아파트들이 이제 일제히 준공 30년을 넘기며 노후화의 궤도에 들어섰다. 도심에는 더 이상 새 단지를 지을 빈 땅이 없다. 주택 공급의 무게중심은 빈 땅에 짓는 신규 분양에서,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재개발, 즉 도시정비사업으로 옮겨갔다. 2002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정으로 그 절차가 체계화되면서, 정비사업은 대도시 주택 공급의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무대가 바뀌자 자본과 경쟁도 이 시장으로 집중됐다. 신규 택지가 줄어든 대형 건설사들은 정비사업 수주에 사활을 걸었고, 하이엔드 브랜드를 앞세운 수주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고 고도화됐다. 최근 10년의 정부 정책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했다.
문재인 정부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시행(2018년)과 안전진단 강화, 분양가상한제 확대로 재건축을 억제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방향을 틀어 안전진단 완화와 재초환 부담 완화, 노후 아파트가 밀집한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특별법’(2023년 제정)과 ‘1·10’·‘8·8’ 대책 등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기조를 잇달아 내놓았다. 인허가 절차를 통합해 사업 기간을 대폭 단축하려는 촉진책까지 더해지면서, 정비사업은 규모와 속도 양면에서 유례없이 팽창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역설은 여기에 있다. 이토록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에도 건설업은 좀처럼 존경받지 못했다. 단기간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 성과를 내야 했던 압축성장의 기조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의 씨앗을 곳곳에 심었다. 권력과 자본의 유착,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안전과 견제 장치는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림자는 이르게 드리웠다. 1970년 4월 서울 마포 와우시민아파트가 준공 석 달 만에 무너져 34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무면허 업체에 준 불법 하청과 공사비 착복, 부족한 철근, 단 6개월의 공기가 부른 최초의 대형 인재였다.
1990년대 초 건설 붐은 부패와 부실을 동시에 키웠다. 1991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에서는 한 건설회사가 공영개발 원칙을 무너뜨리려 청와대 비서관과 여야 의원, 고위 관료에게 150억 원대 뇌물을 뿌렸고, 서울시장이 경질되는 총체적 정경유착으로 번졌다. 같은 해 1기 신도시에서는 골재가 고갈되자 염분을 씻지 않은 바닷모래가 콘크리트에 무단 투입돼, 조사 대상 690개 동 가운데 34.3%인 237개 동에서 기준치를 넘는 염분이 검출됐다. 자재 반입을 통제할 감리가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누적된 ‘빨리빨리’는 결국 연쇄 참사로 터졌다. 1993년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28명 사망)와 부산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78명 사망·198명 부상)이 잇따랐고, 1994년 성수대교가 용접 불량과 유지관리 방기 속에 끊어져 32명이,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불법 증축과 철근 삭감, 옥상 냉각탑 하중이 겹쳐 붕괴하며 502명이 목숨을 잃고 937명이 다쳤다. 이 참사들은 1995년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과 재난관리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21세기에도 계보는 끊기지 않았다. 해운대 엘시티와 성남 대장동으로 대표되는 개발 게이트가 인허가 특혜와 개발이익 사유화의 민낯을 드러냈고, 2021년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는 다단계 불법 하도급으로 공사비가 3.3㎡당 28만 원에서 4만 원대까지 깎이면서, 무너진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졌다. 이듬해 같은 시공사가 짓던 광주 화정 아이파크는 무단 공법 변경과 동바리 조기 철거, 기준 미달 콘크리트가 겹쳐 16개 층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6명이 희생됐다. 이 참사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당겼다. 또한 2023년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전단보강근 누락으로 붕괴하고, 뒤이은 조사에서 20여 곳의 LH 발주 아파트에서 철근 누락이 무더기로 드러났다.
이 오랜 그림자의 뿌리는 하나로 모인다. 발주자가 무엇을 얼마에 짓는지 모른 채 사업을 시공자에게 통째로 맡기는 '정보의 비대칭'이다. 그 위에서 부실과 분쟁, 불신이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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