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력은 세계 1위, 결제는 70분의 1"...NC·넥슨·컴투스가 베트남에 몰려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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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세계가 즐기는 게임을 만드는 나라이지만, 정작 자국 게이머들의 지갑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게임을 만드는 능력으로 보면 세계 최상위권, 그 게임에 돈을 쓰는 능력으로 보면 한국의 70분의 1에 머무는 이 괴리가 바로 베트남 게임 시장의 현재 좌표다. 그런데도 한국 게임사들은 최근 몇 년 새 베트남을 향한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있다. 지금의 숫자가 아니라 앞으로의 궤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자체 게임·앱 시장도 결코 작지 않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어드저스트(Adjust)의 '베트남 모바일 앱 트렌드 2026'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베트남의 전체 앱 다운로드는 28억8,000만 건으로 전 세계 앱 다운로드 순위 11위에 올랐고, 이 중 게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센서타워의 '2025 동남아시아 모바일 게임 시장 인사이트' 보고서에서도 베트남은 2025년 1분기 기준 3억2,900만 건의 게임 다운로드로 동남아 3위를 기록했다. 동남아 지역 전체로 보면 작년 1분기 다운로드 건수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았는데, 그 성장세의 상당 부분을 베트남이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게임 전문 매체 디스이즈게임이 시장분석업체 가모타(GAMOTA)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1인당 월평균 게임 결제액(ARPU)을 비교하면 베트남은 약 0.32달러로 한국(22.60달러)의 7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한국과 베트남의 1인당 GDP 격차가 7배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결제력 격차가 경제력 격차보다 열 배 가까이 벌어져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 간극의 원인으로 3가지를 꼽는다.
베트남중앙은행(SBV) 집계 기준 신용카드 보급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반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이용자의 85%가 신용카드보다 전자지갑(e-wallet) 결제를 선호하는 결제 인프라의 불일치, 광고 시청으로 무료 이용하는 습관이 굳어져 유료 결제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큰 점, 그리고 베트남 이용자가 체감하는 가치에 맞춘 현지화 콘텐츠와 가격 정책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실제로 게임업체 게임긱(GameGeek)의 '베트남 모바일게임 보고서 2025'에 따르면 현지 게임의 73%가 광고 기반 수익 모델에서 인앱결제·하이브리드 모델로 전환하는 중인데, 이 역시 결제력을 끌어올리려는 업계 차원의 몸부림으로 읽힌다.
그런데 베트남을 '게임을 소비하는 나라'가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나라'로 놓고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미국 결제대행사 X솔라(Xsolla)와 구글 분석 자료를 보면, 베트남 스튜디오가 만든 게임의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는 2024년 약 67억 건으로 세계 1위, 작년에는 약 49억 건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하이퍼캐주얼·퍼즐 장르 전문사 아마노츠(Amanotes) 등이 세계적 흥행작을 여럿 배출하며, 베트남 스튜디오들이 세계 모바일 게임 생태계의 '숨은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압도적인 생산력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속도도 최근 빨라지는 분위기다. 구글플레이가 집계한 베트남 현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앱 합산 다운로드는 85억 건으로 전년 대비 39% 늘었고, 퍼블리셔 수익은 같은 기간 69% 증가했다. 다운로드 건수로는 오래전부터 세계 최상위권이었지만, 수익화 속도가 이제야 그 양을 따라잡기 시작한 모양새다.
그럼에도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게임업계가 베트남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의 숫자가 아니라 향후 10년의 궤적 때문이다. 자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이 정체된 한국 게임사들 사이에서는 베트남이 중국을 대신할 차세대 격전지, 이른바 '포스트 차이나' 시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게이머 수(약 5,000만~5,800만 명 수준, 조사기관별 편차 있음)와 인터넷 보급률(78% 이상)이라는 저변 자체가 이미 작지 않은 데다, HSBC의 '2030년 아시아 소비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베트남에서 구매력평가(PPP) 기준 하루 소득 20달러 이상을 버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약 4,80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일소득 50~110달러 수준의 중상류층은 연평균 17%씩 늘어나고, 소비시장 전체는 연 8%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아시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지금의 낮은 결제력은 구조적 한계라기보다 소득이 아직 따라오지 못한 '시차'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 움직임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진입 방식을 기준으로 나눠보면 몇 갈래가 뚜렷하다.
가장 적극적인 쪽은 현지 대형 퍼블리셔와 합작법인을 세운 경우다.
엔씨소프트는 베트남 게임사 VNG와 손잡고 합작법인 'NCV게임즈'를 설립, 2025년 5월 20일 MMORPG '리니지2M'을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6개국(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필리핀)에 동시 출시했다.
스마일게이트는 베트남 국영 미디어그룹 계열사인 VTC온라인(VTCO)과 손잡고 자체 플랫폼 '스토브(STOVE)'의 베트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스마일게이트가 플랫폼·기술·운영을, VTCO가 G1 라이선스 취득을 비롯한 현지 사업 전반을 맡는 역할 분담이다.
블록체인 게임사 넥써스(Nexus)도 VTC인테콤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기존에 구글플레이를 통한 우회 서비스 방식에서 정식 라이선스 체제로 전환했다.
게임사가 자체적으로 현지 퍼블리셔를 거쳐 서비스를 론칭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시작으로 '라그나로크 택틱스', 최근에는 '라그나로크: 트와일라잇'까지 베트남에 잇따라 정식 론칭하며 라그나로크 IP 전체를 현지화하고 있다. 웹젠은 2020년 말 '뮤 아크엔젤'을 베트남에 출시해 출시 직후 양대 마켓 1위에 오르는 성과를 냈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쌓인 '뮤' IP의 현지 인지도가 발판이 됐다.
해긴의 '플레이투게더' 역시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흥미로운 건 자본의 방향이 반대라는 점이다. 베트남 VNG가 2022년 해긴에 직접 투자하며 현지 성공을 뒷받침했다.
컴투스의 대표작 '서머너즈 워'(전체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발생)도 이 유형에 속한다. 한동안 베트남 구글플레이에서 자취를 감췄던 이 게임은 베트남 현지 퍼블리셔 펀탭(Funtap)과 손잡고 ‘서머너즈 워-Funtap’이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서비스를 재개했는데, 결제·고객지원 등 현지 운영 전반을 펀탭이 맡는 구조다.
서비스보다 지역 거점 구축에 방점을 찍은 곳도 있다. 넥슨은 2022년 현지 법인 '넥슨데브비나(NDVN)'를 세워 개발 인력을 90명 넘게 채용했는데, 이는 서비스 전초기지라기보다 인건비 이점을 살린 개발 거점에 가깝다.
카카오게임즈도 2022년 '비욘드코리아' 전략의 일환으로 베트남 법인을 설립해 교두보를 마련해뒀다. 펄어비스는 베트남 최대 한국 게임쇼를 2년 연속 후원하고 한-베 대학생 e스포츠 교류전을 여는 등 브랜드·커뮤니티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간판작 '검은사막 모바일'은 글로벌 정식 서비스 범주 안에서 베트남 이용자도 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중 눈여겨볼 대비는 스마일게이트와 크래프톤이다. 본지가 앞서 다룬 'PUBG 아시아 스타즈' 사태 보도에서 확인했듯, 크래프톤은 베트남 현지 퍼블리셔들과 협업을 타진하면서도 라이선스 취득 대행만 맡기고 운영권은 전적으로 직접 쥐려 했고, 현지법에 맞춘 콘텐츠 수정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아 협업이 번번이 무산됐다. 그 결과가 PUBG PC의 장기간 무허가 서비스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건 이미 짚은 바 있다. 반면 스마일게이트는 처음부터 라이선스·현지 운영을 현지 파트너에게 맡기는 구조를 택했다. 같은 베트남 시장을 두고도, 심지어 같은 한국 게임사들 사이에서조차 진입 방식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성장세는 e스포츠 쪽으로도 옮겨붙고 있다. 베트남 e스포츠 시청률은 이미 전통 스포츠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고, 주요 브랜드들의 스폰서십 참여도 늘고 있다. 정부 정책 기조도 점차 우호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다만 제도적 인프라는 아직 이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본지가 최근 'PUBG 아시아 스타즈' 사태를 취재하며 확인한 지점이다. 대회 규정이 글로벌 표준에 못 미친 채 운영되다 논란이 불거지자 대회 도중 규정을 고치고, 정작 그 무대에 쓰인 게임 자체가 현지에서 정식 서비스 지위조차 없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시장의 양적 성장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인프라 사이의 간극이, 게임 시장 전체는 물론 e스포츠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게임 생산력은 세계 최상위권인데 결제력은 70분의 1에 그치는 이 간극을 메워가는 속도가 결국 베트남이 차세대 게임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를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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