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애국과 시민의식의 경계, 디바오는 축제인가 광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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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큰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도시 전체가 오토바이 물결로 뒤덮인다.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고 자정 넘도록 거리를 누비는데,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거리를 휩쓰는 모습이 마치 폭풍 같다고 하여 '디바오(đi bão)'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달 26일 베트남이 홈에서 아세안 현대컵(ASEAN Hyundai Cup 2026) 우승을 확정지은 그날밤에도 어김없이 이 '폭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외국인의 눈에는 온 국민이 하나 되는 장관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문화가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누군가는 그 밤을 평생 잊지 못할 축제로 기억하겠지만, 같은 밤 목숨을 잃은 이도 있었고, 이 문화 자체에 등을 돌린 이들도 있다. 승리의 기쁨 뒤에서, 디바오를 둘러싼 찬반양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디바오라는 단어 자체는 우리말로 '폭풍처럼 몰아친다'는 뜻과 유사하나, 그 정서적 뿌리는 축구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게 현지의 설명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독립 기념일이나 뗏(설) 명절처럼 중요한 순간마다 대규모로 거리에 모여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적 전통을 오래전부터 이어왔다. 오랜 전쟁의 상처를 지닌 베트남에서, 축구는 국민들이 함께 치유하고 집단적 희망을 확인하는 특별한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해석도 있다.
디바오의 첫 사례로 꼽히는 건 1995년 12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 Game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 대표팀이 말레이시아를 꺾은 첫 승리 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거리 응원이 나타났고, 이어진 미얀마와의 준결승에서 극적인 골든골로 결승 진출을 확정 짓자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디바오'라는 개념이 본격적인 축하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결승에서는 태국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귀국하는 대표팀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인파가 몰렸을 정도였다.
2000년대 들어 2008년 첫 AFF 스즈키컵(현 아세안컵) 우승으로 한 차례 크게 타올랐던 디바오는, 이후 10년 가까이 이렇다 할 우승 없이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2018년 박항서 감독 부임을 기점으로 다시 폭발적으로 되살아났다. 이 때 뜨거운 반응은 이후 한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며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베트남 축구’가 인기 검색어로 자리잡으며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됐다.
이런 장면은 한국인에게도 사실 낯설지만은 않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쓰던 당시, 전국 곳곳의 거리와 광장이 붉은 물결로 뒤덮이며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던 모습과 닮아있다.
베트남은 인구 1억 명에 등록된 오토바이만 8,400만 대(2026년 상반기 기준)에 달하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오토바이의 나라'다. 가구당 평균 1.5~2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고, 하노이 같은 대도시는 등록된 오토바이 수가 거주 인구수보다 많을 정도다.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훨씬 보편적인 이동 수단인 나라이기에,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디바오의 특징 중 하나는 포용성이다.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 베트남을 여행 중이던 외국인 관광객까지 자연스럽게 행렬에 합류하곤 한다. 단순히 경기 결과를 기뻐하는 것을 넘어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라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최근 몇 년 새는 SNS를 통해 이 독특한 축하 문화가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같은 명소에 몰린 인파를 "에너지와 기쁨의 폭풍" 같다고 묘사하는 외국인들의 영상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26일 하노이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아세안 현대컵 2026 결승 2차전에서 태국을 상대로 대회 우승을 확정했다. 사상 첫 대회 2연패였다.
경기 전부터 전국 각급 공안 당국은 사전 경고에 나섰다. 하노이 공안은 교통통제·우회로 계획을 미리 발표했고, 여러 지방 공안도 "응원은 문명적으로 하되, 무면허·헬멧 미착용 폭주나 흉기 소지·집단 소란은 엄정 처벌하겠다"는 공지를 사전 배포했다. 실제로 1차전(8월 22일) 밤에는 응에안성에서만 교통법규 위반 60건이 적발되고 오토바이 30대가 압류됐고, 동탑성에서도 경찰 87명이 29차례 순찰을 돌며 위반 73건을 적발했다.
그럼에도 사고까지 막지는 못했다. 결승 2차전이 열린 지난달 26일 밤 하이퐁에서는 우승을 자축하며 디바오 중이던 10대 두 명이 탄 오토바이가 화물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나 한 명이 목숨을 잃고 한 명이 다쳤다. 당국의 사전 대비에도, 축제의 기쁨만큼의 안타까움이 함께 남은 밤이었다.
디바오를 둘러싼 우려가 쌓이자, 최근 몇 년 새 디바오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스스로 질서를 지키려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SNS 인플루언서들도 "책임감 있게 즐기자"는 캠페인에 동참하는 등, 축하 문화 자체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도 관측된다.
하지만, 디바오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뚜렷하다. 디바오가 바꿔야할 악습이라는 한 누리꾼의 지적에 20대 베트남 남성 A씨는 SNS에 "몇몇의 일탈 행위를 근거로 디바오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며 "참여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하고, 불편하면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최근 들어 디바오가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20대 베트남 여성 B씨가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주변에 디바오를 하지 말라고 했다가 "그럼 넌 애국하지 않는 거냐"는 반응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디바오의 혼잡한 분위기를 이용해 성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SNS에서도 비슷한 불편 사례들이 확인된다. 한 이용자는 어머니가 퇴근길에 하노이의 한 터널에서 몇 시간째 갇혀 있다가, 오토바이 행렬의 경적과 함성을 견디지 못해 결국 오토바이를 두고 걸어서 터널을 빠져나와야 했다는 사연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팍팍한 도시 삶에 지친 청년들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탈출구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밤새 거리를 함께 누비며 목청껏 소리 지르는 그 순간만큼은, 내일이면 다시 빠듯한 생활비와 좁은 자취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베트남 언론과 여론 안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현지 매체 뚜오이쩨(Tuổi Trẻ)는 지난달 24일 "'디바오' 축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Đi bão ăn mừng, sao cứ phải làm quá mới chịu)"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런 논쟁이 단순한 '애국 대 반애국' 구도로 흐르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스레드(Threads)에서는 디바오에 불편함을 토로한 한 이용자에게 "싫으면 다른 나라 국적을 알아보라"는 반박이 달리자, 정작 그 이용자는 자신이 해외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자발적으로 귀국해 세금을 내고 정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며 그런 이분법으로는 반박이 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전쟁의 상처를 함께 딛고 공동체적 기쁨을 나누던 오래된 전통에서 출발한 디바오는, 이제 그 규모만큼이나 복잡한 사회적 논쟁까지 함께 짊어지게 됐다. 승리의 기쁨과 그로 인한 불편과 위험 사이, 베트남 사회는 여전히 그들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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