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깨어나는 나라 베트남...숫자와 가족,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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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교실에서 시작되는 하루…낮잠과 조상 제단, 숫자 하나에도 문화가 숨어 있다
[이정세 칼럼] 외국에 나가면 일주일을 가본 사람이 제일 그 나라를 잘 안다. 한 달, 일 년이 흐르면 갈수록 그 나라에 대해서 모른다. 그게 오랫동안 형성된 문화라는 것이다.
호치민(옛 사이공)의 아침은 빠르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 4~5시부터 공원과 거리에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걷고 뛰는 사람들,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오토바이가 하나둘 거리를 채운다.
베트남 사람들의 하루가 한국보다 일찍 시작된다는 것은 여행자가 가장 먼저 체감하는 차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이 새벽 4~6시에 하루를 시작하고 학교는 오전 7시께 첫 수업을 시작한다. 직장 역시 오전 7~8시에 출근해 오후 4~5시에 퇴근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 대신 한낮에는 삶의 속도가 잠시 느려진다. 관공서 등에서는 오전 11시30분이나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 무렵까지 점심시간을 갖고, 일부에서는 문을 닫고 불을 끈 채 낮잠을 자기도 한다. 어린 학생들도 점심과 휴식을 가진 뒤 오후 수업을 이어가는 문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생활습관이라기보다 열대의 기후에 적응해 형성된 시간의 문화로 볼 수 있다.
폭 4m, 길이 20m…집의 모양에도 베트남이 있다 베트남 도시를 걷다 보면 유난히 폭이 좁고 안쪽으로 긴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에서는 대표적인 도시형 주택을 폭 4~5m, 길이 15~20m 정도로 설명하며 흔히 4m×20m 형태를 예로 든다.
천장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더운 공기를 위로 보내 실내 열기를 줄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출입문 안쪽에 철제문을 하나 더 설치한 집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집을 자세히 보면 건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다. 가정은 물론 식당이나 작은 가게에서도 제단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조상에게 음식과 향을 올리고 종이로 만든 돈이나 생활용품을 태우는 풍습에는 불교와 민간신앙, 조상숭배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베트남에는 한국식 ‘전세’ 개념이 없고 임대 또는 소유가 중심이다. 책은 공동체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단독주택 선호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처음 만났는데 “몇 살이에요?”라고 묻는 이유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당황하기 쉬운 질문 가운데 하나가 나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나이를 묻는다. 무례해서라기보다 상대방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베트남어의 호칭은 상대방의 나이와 관계에 따라 형·누나·언니·동생·아저씨·아주머니·할아버지 등에 해당하는 친족 호칭을 폭넓게 사용한다. 따라서 대화를 시작하려면 상대가 자신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베트남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쇳말이 숨어 있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회사와 사회에서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족관계에 빗대어 표현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9’는 좋아하고 ‘13’은 피한다 숫자에도 문화가 담겨 있다. 책에서는 베트남에서 일부 사람들이 13을 불길하게 여겨 건물의 13층을 12A·12B 등으로 표시하기도 한다고 소개한다. 반면 9는 권위와 완전함을 상징하는 길한 숫자로 선호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좋은 숫자가 반복되는 휴대전화 번호가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사진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부 전통적 믿음에서는 세 사람이 사진을 찍을 때 가운데 선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어 세 명이 나란히 사진 찍는 것을 꺼리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이런 숫자 금기는 지역·세대에 따라 차이가 크며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베트남 직원을 공개적으로 꾸짖어서는 안 되는 이유 기업에서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자존심과 관계다. 한국식 상명하복 문화가 베트남 조직에서 그대로 통한다고 생각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직원을 심하게 꾸짖거나 체면을 손상시키는 행동은 특히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령만 하기보다는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관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자주 언급된다. 단순히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선수들을 존중하고 관계를 형성했던 리더십이 베트남 사회에서 호응을 얻었다는 해석이다.
퇴근에 대한 인식도 한국과 차이가 있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직장보다 가족과 개인생활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이 책의 설명이다. 결국 베트남에서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단순한 명령보다 체면과 존중, 관계와 설명에 있다는 것이다.
지폐에는 한 사람, 호찌민이 있다 베트남의 화폐 단위는 동(VND)이다. 현재 일상에서는 동전보다 지폐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고액권을 만져보면 종이와 느낌이 다르다.
1만 동 이상의 여러 권종은 내구성이 높은 폴리머 소재로 제작돼 있다. 그리고 지폐에서 반복적으로 만나는 얼굴은 베트남 현대사의 상징인 호찌민이다.
숫자 표기에도 주의해야 한다. 베트남에서는 한국과 다른 방식으로 마침표와 쉼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가격표를 볼 때 혼동하기 쉽다.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 만든 거리문화 베트남을 이야기하면서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최상위권의 커피 생산·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아침이면 작은 의자를 내놓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얼음이 가득 든 잔, 길가 카페에서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커피는 베트남에서 농산물이면서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세 걸음만 가도 오토바이를 탄다” 그리고 베트남의 도시를 설명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오토바이다. 전통적으로 ‘세옴(xe ôm)’이라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부터 오늘날 앱 기반 이동서비스까지 오토바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하다.
호치민의 첫 인상은 단연 알 수 없는 냄새다. 다음은 오토바이다. 예전보다 더 질서를 찾아 가고 있지만. 일단 걷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동수단은 이륜차가 압도적이다.
베트남 전체 등록 차량의 약 94%가 이륜차였으며, 규모는 7,500만~8,000만 대 수준으로 빠르게 전기차로 전환이 필요해보인다. '카오스 안에 질서'라고 해야하나. 사고는 아직 한 건도 못봤다
호찌민의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은 처음 온 여행자에게 혼돈처럼 보인다. 그러나 며칠을 지켜보면 나름의 흐름이 보인다.
출근도, 장보기도, 아이 등하교도 오토바이와 연결된다. 그래서 오토바이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베트남 도시생활을 움직이는 혈관에 가깝다.
과일에도 소금을 찍어 먹는 사람들 음식문화에도 낯선 장면이 많다. 베트남에서는 여러 과일을 소금이나 고추가 섞인 양념에 찍어 먹는다. 바나나도 생으로만 먹지 않고 굽거나 삶는 방식이 있다.
맥주잔에 얼음을 넣는 모습도 흔하다. 시장에서 식재료를 한꺼번에 많이 사기보다 그날 먹을 만큼 구입하는 생활방식 역시 더운 기후와 전통적인 식재료 보관환경에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탁에서는 긴 젓가락을 사용하고 가족들이 여러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다. 술자리 역시 한국처럼 복잡한 격식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쟁을 견딘 나라가 지키려는 것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하려면 결국 역사로 돌아가게 된다. 베트남은 중국 왕조들과 오랫동안 대립했고, 19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기 일본의 진주와 이후 프랑스와의 전쟁, 베트남전쟁까지 근현대사는 끊임없는 외세와 전쟁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강한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의 기억은 오늘날 베트남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따라서 베트남 사람을 단순히 ‘값싼 노동력’이나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시장’으로 바라보면 이 사회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의 뒤에는 가족, 체면, 공동체, 신앙 새벽 5시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 오토바이에 아이를 태워 학교로 향하는 부모, 집 한편에서 조상에게 향을 올리는 가족, 길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직장인.
그 평범한 일상의 뒤에는 가족, 체면, 공동체, 신앙 그리고 오랜 천년전쟁을 견디며 형성된 자존심이 있다.
베트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거대한 경제성장률이나 수출통계를 읽는 것보다 그들의 하루가 몇 시에 시작되고,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집 안 어디에 조상을 모시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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